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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47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249 - 28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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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조선인들은 부득이 만주로 이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이에 대한 식민지 지식인들의 생각은 만주를 둘러싼 개념을 구체화했다. 먼저 단순한 지리적 용어로 사용되면서 황량한 광야로 인식되어 거의 민족의 외부인 망명지로 개념화된 만주는 점차 조선인들의 이주가 증가하면서 조선과 상상적으로 동일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과정의 심화는 만주를 고토로 인식하는 역사상의 상징적 동일시로 확장되고 이를 통해 민족주의적 시각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점차 만주에서의 민족적 갈등이 출현하기 시작하자 만주를 조선을 대리 표상하는 민족의 수난처로 의미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만보산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인식은 확장되었고 만주라는 개념은 조선과 상징적으로 동일한 민족의 내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개념화의 중심에는 재만 조선인이 있었다. 그러나 1931년 9월 만주사변과 괴뢰 만주국의 수립은 기존의 만주 개념의 의미화를 다른 곳으로 밀고 갔다. 즉 문명론과 개척을 통한 만주의 유토피아적 인식이 그것이며 이는 사실적인 측면이 아니라 개념이 사실을 추동한 측면이 강했다. 이에 따라 식민주의를 점차 내면화한 지식인들은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적(의사 제국주의적) 시각을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그 전면에 이제는 자본가들을 내세웠다. 이 지점에서 그동안 만주 개념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재만 조선인은 점차 논의에서 제외되었다. 또 다시 만주를 둘러싼 개념의 변용이 이루어졌다. 특히 1940년을 전후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시각이 아니라 국제주의적 측면에서 만주를 사유하고자 하는 또 다른 측면의 변화가 엿보인다. 우선, 만주를 ‘왕도낙토’로 만들려고 하는 설립취지인 ‘민족협화’가 수사적이고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순진한 생각임은 만주국의 전개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주국과 동의어로 의미화된 ‘민족협화’라는 용어는 소속된 민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의 협조․협력을 통한 국제주의로의 전환도 가능한 이데올로기였다는 점에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 왔다. 특히 ‘자치주의’의 강조가 그것인데 5개 민족의 자치가 구현된다면 민족의 안위는 물론이고 민족 간의 협조․협력을 통한 국제주의로까지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하였다. 그렇다면 낭만적 유토피아라고 하는 만주 개념은 의사 제국주의에 기반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심화와 대륙 침략을 원활하게 하는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정치적 수사가 확대되면 될수록 지속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을 드러내며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을 저지하고 균열을 내는 지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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