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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드라마학회 드라마연구 드라마연구 제51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5 - 3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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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타자의 고통을 재현하는데 따른 예술 창작주체와 소비주체의 윤리적 태도와 책무에 대해 성찰한 글이다. 특히 타자의 고통을 재현함으로써 행동주의(activism)를 추동하려는 소위 포스트드라마 연극 계열의 자기반영성, 곧 자기성찰성을 보여주는 것의 윤리 곧 재현의 윤리와 연관하여 고찰하려 했다. 문화예술이 현실에 개입하는 방식은 메시지를 담은 공연 내용의 전달에 한정되지 않는다. 무대 위 타자의 고통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 역시 현실에 개입하는 한 방식이며, 이러한 방식은 행동주의를 추동하는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한 특징이 된다. 하지만 이때 타자의 고통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보여주는 창작주체의 윤리, 나아가 지켜보는 소비주체의 윤리라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정의로운 목적이 부당한 수단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기”때문이다. 행동주의 연극에서는 기본적으로 창작주체와 수용주체를 구분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행동주의 연극에서 공연이란 창작주체와 수용주체가 함께 수행하며 실천적 행동을 모색하는 것으로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 공연의 창작주체와 소비주체의 윤리를 구분 없이 논의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환영을 창출하는 극적 재현은 예술적 가공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고통의 실제적 현존과 달리 고통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바로 그 거리 때문에 고통을 재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추동하려는 실천적 행동을 끌어낸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또한 재현을 대신해 실제적 고통의 감각을 현존적으로 전경화시키는 경우, 단순히 감각을 공유하고 나누려는 의도나 태도만으로 타자의 고통을 재현하는데 따른 관음적 욕망에 대한 자기성찰적 윤리가 충족되기는 힘들다. 감각 그 자체는 윤리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재현된 타자의 고통은 창작주체에 의해 비주체적으로 대상화되고, 대상을 보는(간접 경험하는) 소비주체의 관음증을 자극하는데 머물 수 있다. 재현하는 행위, 재현되는 대상에 대한 창작주체의 윤리적 자기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고통의 표현은“자기표현인 동시에 타인의 관심에 대한 호소”이다. 하지만 타자의 고통을 한 순간 공감할 수는 있어도 나의 고통으로 자기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자 레비나스도 타자의 고통은 어떤 수단을 통해서도 자신에게로 환원되지 않으므로 자기화하여 대리할 수 있을 뿐이며, 따라서 윤리학의 도움 없이는 타자의 고통을 내 것처럼 대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에서는 타자의 고통을 재현할 때의 윤리적 문제를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그녀를 말해요>와 극단 신세계의 <그러므로, 포르노>를 통해 고찰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이들 작품을 평가하거나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들 작품에 드러난 타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방법을 논증의 예시로 활용, 재현된 타자의 고통을 자기화하는 태도는 그 고통에 대한 윤리적이자 실천적인 태도를 전제한다는 관점에서, 타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방식의 윤리적 자기성찰의 가능성에 대해 분석했다. 창작주체에게 요구되는 재현의 윤리는 바라보는 자의 관점과 태도, 구체적으로 보는 위치 설정의 문제와 연관되어 고통의 대상화 혹은 주체화로 드러난다. 고통의 외부에 위치하되, 재현된 고통에 대한 객관적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선택하여 대상화를 피하고자 했던 <그녀를 말해요>의 창작주체들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무책임한 관찰자로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타자의 모든 고통을 나의 것으로 동일시할 수 없다면, 역으로 나의 고통을 타자화함으로써 동일시의 전제 내재적 추론의 모순 극복할 수 있다. 곧 나를 타자화하도록 유도하는“전제 초월성의 추론”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포르노>가 보여준 것처럼 그것은 타자의 고통을 대속하는 나의 고통을 타자화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 실천적, 참여적 수행이 사회의 문화로 확장되는 예술, 행동주의를 지향하는 예술이 새로운 문화예술 윤리학을 구성한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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