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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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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82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99 - 114 (1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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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균관의 총책임자인 대사성이 된다고 하는 것은 사표(師表)가 될 만한 자질과 덕행 및 학문적 실력을 고도로 갖춘 자라고 할 수 있다. 각종 문헌 곳곳에서 성균관 대사성을 임명할 때는 항시 유생들의 본이 될 만한, 그리고 사회의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자질과 높은 학문적 실력 및 덕망을 비롯한 높은 나이 등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으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과 기준이 고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적합한 인물들이 성균관 대사성으로 제수되는 일은 생각보다 그다지 많지를 않았다. 정조 때에 한정하여 본고는 이러한 문제를 논구하였는데, 교체 이유가 뚜렷하게 명시된 곳이 거의 없고,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의 문헌을 통해 확인한 결과, 겨우 5명 정도만이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조 재위 24년간 대사성은 74명이나 거쳐 갔으니 1인당 겨우 4개월 정도 재직한 것으로 파악되며, 하루 이틀 사이에 교체되는 일들도 수십 차례나 되고, 동일인이 자주 대사성에 다시 등용되었던 것을 계산하게 되면 251회나 바뀌어서 평균 1.1개월 밖에 재임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명식은 성균관 유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황감제 때 국왕의 명령이 없었는데도 멋대로 방외유생들을 응시하게 했다는 이유로, 민종현은 󰡔태학지󰡕로 유명한 사람인데 실상은 과거글제를 기록하지 않아 직무태만으로, 김방행은 관서유생의 1인 시위를 제대로 타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의필은 감제 때 춘당대에서 자리정돈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해서, 윤광안은 붕당문제도 있었지만 문묘알성 태만으로 교체되고 말았다. 이렇게 5명의 성균관 대사성은 교체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는데, 그들의 벼슬이력을 통해서도 이명식은 2회, 민종현은 8회, 김방행은 2회, 이의필은 4회, 윤광안은 1회의 파직 경력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다지 성실한 관리들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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