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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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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55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253 - 277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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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19세기 중엽 이후 한중양국 국경문제가 발생하게 된 배경과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된 한중양국 간의 국경교섭을 ‘한중국경문제의 발단’과 ‘한중국경문제의 교섭’ 두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한중국경문제의 발단’에서는 한중국경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한국인의 간도(間島) 이주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인의 간도 이주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작용하고 있다. 첫째 17세기 중엽 중국을 지배한 청국(淸國)이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지역 일대에 봉금정책(封禁政策)을 실시하여 간도지역이 황무지로 변하였다. 둘째 19세기 중엽 이후 조선의 정치실정과 러시아가 극동으로 진출하면서 한인(韓人) 유치정책을 실시하였다. 셋째 러시아의 극동진출에 대응하여 중국이 동북지역을 중시하여 개방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대내외적 배경으로 인해 한국인이 간도지역으로 대량 이주하면서 한중양국 사이에 간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국경 분쟁과 영토 분쟁이 발생하였다. ‘한중국경문제의 교섭’에서는 19세기 말 한중양국 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주요한 국경교섭을 순차적으로 살펴보았다. 제1차 국경교섭은 1885년에 실시된 을유감계(乙酉勘界)로 이때 한중양국은 두만강과 토문강(土門江)의 진위와 두만강의 원류에 대해 교섭하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제2차 국경교섭은 1887년에 실시된 정해감계(丁亥勘界)로 이때 한중양국은 두만강과 토문강이 본래 하나의 강이라는 점에 합의하였으나 두만강의 원류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그 이후 한중국경과 간도 영유권은 1909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이 청국(淸國)과 소위 간도협약을 통해 임의로 중국에 양보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간도지역을 둘러싼 한중양국의 국경교섭은 한중양국 간 정식으로 합의된 적이 없는 미완(未完)의 역사문제이다. 따라서 한중국경교섭은 중대한 역사문제로 앞으로 계속 검토하고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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