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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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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18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77 - 11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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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치세가 막다른 골목을 향해 치닫던 시기는 광해군 치세 3기(광해군 10년~광해군 15년)였다. 이 시기는 광해군의 失政의 강도가 점차 커져가고, 그의 우군인 3대 주축세력[왕실, 외척, 대북세력]들도 더욱 기승을 부린 시기였다. 이들의 탐욕스럽고 방탕한 생활 속에 가까스로 버텨오던 농가경제가 엄청난 부세 부담과 강제 노역 동원의 압박 속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농민경제가 총체적인 붕괴 국면에 접어든 시점은 광해군 12년(1620) 여름을 전후한 시기였다. 이렇게 불안하고 암울했던 정치경제 상황은 1623년 3월 인조반정을 계기로 진정 되어 갔다. 인조 정부(1623~1649)는 1598년 선조 정부(1600~1608)가 전후 복구사업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바 있던 ‘與民休息 政策’을 다시 들고 나왔다. 그런 이유에서 인조 대에는 광해군 치세 15년(1608~1623) 동안 민간사회와 민간경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으로 인한 온갖 병폐들이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경제는 16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사회가 안정되었으며, 인구가 증가하는 등, 17세기 전·중반의 장기 호황 국면을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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