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21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311 - 336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음력 섣달그믐에 악귀와 사신을 쫓기 위해 행해지던 의식인 儺禮는 그 성격에 따라서 크게 驅儺儀와 儺戱로 구분되는데, 이중 나희는 다시 연행된 장소에 따라 宮庭儺戱와 道上儺戱로 나누어진다. 이 중 나희의 행사로서는 궁정의 악가무 와 잡희 등이 있었는데, 악가무를 시연하던 악공과 기녀들의 관리와 감독 그리고 교육을 담당했던 기관으로는 장악원(조선)과, 대악서 혹은 관현방(고려) 등의 관청이 있다. 그러나 창우의 경우 시대별로 감독 기관이 상이한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는 軍器侍와 義禁府가 이를 담당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병장방에서 관리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바로 이 고려시대 기관에 대해 밝혀 보고자 한다. 나례의 잡희와 준비에 관련된 고려시대의 기관은 기존설과는 달리 견룡대와 사평순위부로 추정되는데, 이 중 견룡대는 이후 군기시로 체계화 되어 조선시대로 이어지고, 이들이 비상시 연행한 擊毬, 打毬, 馳馬 등의 상무적인 잡희는 후에 조선시대로도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屛帳房을 儺禮都監의 전신으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牽龍隊가 軍器監(군기시의 전신)의 전신이라고 보는 시각이 더 타당할 것이다. 사평순위부 또한 이색의 ‘구나행’ 혹은, ‘고려사절요’의 내용에 의해 조선시대 의금부의 전신이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선시대의 군기시가 나희의 준비와 관리 감독을 역할만 하고, 연행은 창우들이 맡아 진행했던 것과 달리, 견룡대는 연행까지 직접 행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나희를 左邊과 右邊으로 나누어 맡아 준비하던 전통은 고려 때부터 전해 온 것으로 보이나, 그 역할이 정확하게 분리되었던 것은 고려 중기 이전부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2)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