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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45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39 - 26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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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통음악의 존폐위기에서 이왕직아악부에서 이루어진 교육과 연주활동은 장악원의 음악을 현재의 국립국악원까지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각종 국가 의례와 행사, 방송활동, 아악생의 교육 및 이습회(肄習會)개최, 악기 정리 및 복원, 악서 편찬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동안 전승이 끊어질 수도 있었던 궁중음악의 전승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이왕직아악부를 피리연주자와 연주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피리연주자에 대해 살펴 본 결과 1기부터 6기까지 입학하여 졸업까지 한 인원은 총 96명으로 전공은 가야금, 거문고, 피리, 대금, 비파, 해금, 생황 등 다양했다. 이 중 피리전공자는 총 25명으로 25%에 해당한다. 이왕직아악부의 피리연주자는 1기 3명 2기⋅3기 4명, 4기 5명, 5기 4명, 6기 5명이었다. 피리전공자 비율은 1기 33%, 2기⋅3기 22%, 4기 28%, 5기 22%, 6기 20%로 전공악기 수와 아악수의 인원에 대비해보았을 때 높은 비율이다. 피리 전공은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자에 한해서 전공할 수 있었다. 또 1기 2기생의 경우 수석졸업이 피리전공이었으나, 3기 4기의 경우 꼭 수석은 아니었지만, 좋은 성적으로 상위권에 속해있었다. 이후 많은 연주자들이 매 기수마다 배출되어 활동을 펼쳤지만 6기의 경우 6.25등을 이유로 이강덕을 제외하고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이들이 활동한 공연은 이습회를 제외하고도 다양했다. 이 연구에서는 공연활동 중 두드러진 해외공연활동과 <조선아악> 음반발매만 한정하여 살펴보았다. 특히 1924년 교토공연은 이왕직아악부의 본래 목적과 다른 경향의 공연이었는데, 아악생들의 역할도 변화되었다. 파견된 인원은 총 12명으로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사였던 김영재를 비롯하여 아악수 이봉기, 김영기, 김계선, 김수천, 박삼쇠, 고영재 7명이 악원으로 편성되고, 이병우⋅박노아⋅박성재⋅김선득⋅이병성 5명은 무원으로 편성되었다. 그런데 이 5명은 모두 피리전공자들이다. 다시 말해 피리연주자들이 무원으로 참여한 것인데 당시 나이가 16세에서 20세 사이로 무동(舞童)의 역할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피리연주자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편성에 배치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피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조선아악> 음반발매를 꼽을 수 있다. <조선아악>에는 제례악을 비롯하여 연민락, 보허자, 취타, 영산회상이 수록되어 있다. 이 음반은 1.2기생들로 구성되어 연주되어 있으며, 때에 따라 피리 연주자가 훈과 같은 다른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이왕직아악부의 피리연주자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 많이 미흡하여 추후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인물이나 연주활동 등을 통해 많은 정리가 필요할 것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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