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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Leighanne Kimberly Yuh (Korea University)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아연구 아세아연구 제62권 제1호(통권 제175호)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53 - 84 (32page)
DOI
10.31930/JAS.2019.03.6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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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조선 정부는 갑오개혁이라 알려진 전면적인 개혁 계획에 착수하였다. 이는 근대화를 이룩하고 자주독립국을 세우기 위하여 유례없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혁을 꾀한 시도였다. 그러나 현대 학계의 갑오개혁에 대한 여러 묘사는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혹자는 일본의 압력에 의한 노력의 결과라고 묘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적 민족국가의 초기 발생 단계로 그려내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제삼자의 시선이 이 문제에 대하여 통찰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당대 미국인의 시선을 통해 개혁 성과를 검토한다. 미국인들도 과연 이 개혁 계획이 일본인 ‘고문관’들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보았는가, 아니면 한국의 근대화와 자강운동에 있어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보았는가? 누가 개혁 절차를 주도했다는 것이 이들에게 의미가 있었는가, 아니면 개혁의 결과만이 중요한 문제였는가? 한국에 주재하던 선교사와 외교관, 정치 고문, 그리고 기자는 개혁과 그 여파에 대하여 글을 남기었고, 미국의 신문 보도는 미국 대중들에게 극동의 소식을 전하면서, 개혁이 절실한 상황에서 격동하는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목격자의 기록을 통해 갑오개혁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당시 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측면은 지속성과 확실성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개혁에서 일본인의 역할과는 별개로, 한국에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유발할 근대화 개혁 계획이 필요했음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의견의 일치가 있었다.

목차

Introduction
Previous Scholarship
1894 to 1896: Turmoil and Uncertainty
American Sources
Conclusion
References
국문초록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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