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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62輯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127 - 167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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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시안(西安)에서 발굴된 도관칠국육판은합(都管七國六瓣銀盒)에 7개 나라 이름과 인물도가 새겨져 있다. 이 논문은 7개 나라 가운데 고리국(高麗國)에 관한 것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은합에는 고리국(高麗國)이란 명문과 함께 깃털관(羽冠)을 쓴 인물도가 있는데 이 인물이 ① 고리 사람(高麗人)이라는 설, ② 신라사람이라는 설, ③ 발해 사람이라는 설, 심지어는 ④ 왕씨 고리(高麗) 사람이라는 설까지 갖가지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이 은합의 제작연대가 고리(高麗)가 당나라에 항복한 뒤인 9세기(晩唐)라는 전제 아래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대 측정은 미술사적인 입장에서 은합의 생김새를 가지고 추정한 것으로, 명문에 나온 7개 나라에 대한 역사학적 고찰이나 그림의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추정한 것이었다.
이 논문은 그 인물이 고리국(高麗國)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첫째, 은합에 새겨진 나라들을 자세히 분석해 본 결과 모두 고리(高麗)와 함께 같은 시대에 존재했던 나라들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와 반대로 9세기에는 고리국(高麗國, 전 37~668)과 토번(吐蕃, 618~842)은 물론이고 808년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무너지면서 소륵(疏勒) 및 바라문국(婆羅門國)과도 교통이 끊어지기 때문에 당나라를 중심으로 7개국이 둘러싸는 천하관을 표시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째,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는 발해나 통일신라시대 사신들이 만당(晩唐) 때 당나라에서 사리를 분배 받는 모습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나라 초인 602년에 고리(高麗)가 수나라 황제로부터 사리를 받았다는 자료를 발굴하여 분석하므로 해서 사리분배도의 장면이 9세기보다 200년 이상 앞서는 7세기 초일 가능성이 있고, 은합이 9세기 것이라 하더라도 그릇에 새겨진 장면은 고리(高麗)가 존재했을 당시의 장면으로 봐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사리함의 생김새만 보고 연대를 추정하는 기존 설에 비해 훨씬 신빙성이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은합에 나온 고리국(高麗國)은 고리(高麗)가 당나라에 항복하기 이전의 고리국(高麗國)이라고 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도관칠국육판은합(都管七國六瓣銀盒)에 대한 연구사
Ⅲ. 도관칠국육판은합(都管七國六瓣銀盒)에 새겨진 7개 나라에 대한 재검토
Ⅳ. 사리분배 사료 분석을 통한 제작연대 재검토
Ⅴ.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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