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윤영 (가천대학교)
저널정보
인문사회예술융합학회 문화와융합 문화와융합 제40권 제6호(통권 제56집)
발행연도
2018.10
수록면
579 - 614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19세기 후반기에 조선에 들어와 대한제국 황실의 의전을 담당하는 ‘황실전례관’인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1838-1922)의 정치 외교적 활동, 특히 대한제국 시기 고종의 밀사활동에 대해 독일 외교문서를 통해 복원하려한다. 본 연구가 독일 국적의 프랑스 태생인 여성 손탁이라는 인물을 선택한 이유는 평범한 외국인으로서 황실에서 근무하며 경험한 대한제국을 통해 근대 정치사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줄 수 있는 인물이라는 데 있다. 그녀는 을미사변이후 아관파천동안 고종의 곁에서 자문역을 하였고, 고종의 환궁과 함께 궁으로 들어와 고종의 최측근이 되었다. 이후 손탁은 황실의 정치적인 업무에 깊이 관여하게 되고, 손탁호텔을 중심으로 정동구락부, 독립협회 등과 궁중의 연결책을 맡기도 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전후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강압을 목격한 그녀는 항일 투쟁을 위한 밀사가 되었다. 1905년 여름부터 1906년 가을까지 손탁의 유럽 휴가는 개인적인 목적보다는 고종황제의 밀사로 불가피하게 유럽을 방문하는 것이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확실한 이유라고 밝혔다. 유럽 휴가 기간에 손탁에게 주어진 임무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특사 파견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1906년에서 1907년으로 순연되어 손탁의 임무는 드러나지 않았다. 역시 손탁의 휴가목적인 유산문제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그리고 고종황제 ‘밀사’ 역할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독일외교문서에서도 아쉽지만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밀사라는 신분을 위해 비밀스럽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라 본다. 이렇듯 대한제국 정치외교에 긴밀하게 그러나 깊이 관여했던 손탁의 정치적인 밀사활동은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는 없는 ‘네 번째 밀사’들 중 한 명이었다 할 수 있다.

목차

1. 서론
2. 정동에서 손탁의 정치 외교적 활동
3. ‘황실전례관’ 손탁과 대리인 엠마 크뢰벨
4. 손탁의 프랑스 휴가여행과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밀사’
5. 결론
참고문헌
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