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윤정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36집
발행연도
2018.7
수록면
339 - 372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국휼 중 사가의 상례는 병유상竝有喪으로 인식되면서, 무거운 군상君喪과 가벼운 친상親喪에 차등을 부여하여 명분에 맞는 의례를 실천하는데 주목하였다. 국휼 중 사상私喪의 연제練祭·상제祥祭 시행은 국제와 고례가 충돌하는 사안이었고, 송시열과 박세채의 논쟁으로 부각되었다. 송시열은 국제를 따르는 김장생의 예설을 계승하여 국휼의 졸곡 후로 연·상제를 미루어 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세채는 고례인 『예기』 「증자문」에 따라 관직의 유무를 구분하여, 유관자는 연·상제를 국휼의 졸곡 뒤로 미루어 지내지만 무관자는 국휼에 상관없이 그대로 지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후 소론학자인 박세채·윤증·최석정을 중심으로 고례인 「증자문」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고례를 근거로 했지만, 관직의 유무, 제사와 변제變除의 구분, 간략 설행 여부를 두고 논쟁이 지속되었다.
18세기 인현왕후 국휼을 계기로 사상의 연·상제 문제가 국가차원에서 논의되었다. 최석정은 고례와 박세채의 예설을 근거로 국휼의 졸곡과 상관없이 간략하게 연·상제를 지내는 방식을 제안했지만, 「증자문」의 ‘과시부제過時不除’해석을 놓고 이봉징과 갈등하였다. 권상하의 주장에 따라 송시열의 ‘졸곡후 연·상제’가 채택되면서, 국제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후 영조대 정성왕후의 국휼에서 영조는 ‘공제 후 연·상제’를 새로운 국제로, 홍계희는 ‘졸곡후 연·상제’를 고례로 주장하면서 논쟁하였다. 홍계희의 주장이 『국조상례보편』에 수록되면서 ‘졸곡 후 연·상제’는 고례이자 국제로 인정되었다.
김장생의 ‘졸곡 후 연·상제’는 국제를 중심으로 했지만, 이후 고례를 근거로 하는 비판에 대응하면서 고례와의 친연성이 강조되었다. 송시열은 절충적인 시각을 보였고 이후 홍계희에 이르면 ‘졸곡 후 연·상제’는 고례로 간주되었다. 처음부터 고례를 중시했던 박세채 등의 주장 역시 하나로 귀결되지 못했다. 특히 최석정은 「증자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박세채의 예설을 자의적으로 인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례’나 ‘국제’라는 개념은 매우 다의적·중층적으로 사용되면서, 정당성과 상징성을 위해 소비되는 경향이 강했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국휼 중 연·상제 논의의 전개
3. 18세기 ‘고례의 국제화’ 과정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4)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8-911-003592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