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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인호 (광운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65輯
발행연도
2018.4
수록면
41 - 72 (32page)
DOI
10.31335/HPTS.2018.04.6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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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국왕은 관료, 지배층, 대중과의 소통이 필요하였다. 특히 고려왕조는 지역 세력을 통합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야 했다. 따라서 고려왕조는 소통을 위한 정치적 제도화가 필요하였다.
고려왕조는 제도적으로 언론을 담당하는 관료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고려왕조가 처음부터 제도를 만든 것은 아니다. 고려초기 국왕은 소수의 고위 관료만을 만났다. 따라서 소통을 위한 제도는 필요하지 않았다.
국왕인 광종은 권위적인 통치를 하였고, 이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안정을 위한 욕구가 커져갔다. 언론을 맡은 관료는 이로 인해 제도적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지식인은 고려후기 군주수신론을 통해 소통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반면에 군주와 신하 간의 긴장은 잔치를 통해 해결하였다. 또한 군주와 신료 간의 소통은 문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군주는 관료의 의견을 직접 들었다.
민본론은 유교경전인 서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 이념은 고려후기까지 확산되었다. 그리고 조선왕조는 정도전에 의해 이를 기본적인 이념으로 삼았다.
또한 고려왕조는 민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고려왕조에서 민의는 주로 요언이나 와언, 동요 등으로 표출되었다. 이것은 사회적 불안감을 틈타 확산되었다. 이를 막기 위한 정책이 그때마다 이루어졌지만, 체계화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왕조는 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였다. 유언비어는 대표적인 민의였다. 이를 수집하는 것은 언관들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였다. 조선왕조는 이를 모아서 정치에 반영하려고 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국왕과의 소통과 제도화
Ⅲ. 민본 이념과 소통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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