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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對蒙 대응 논리와 '大國이미지' : 1231, 1232년 외교문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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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plomatic Logic toward the Mongol Empire of the Koryo and Images of 'Great State'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보광 (고려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1호 KCI등재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273 - 309 (37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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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對蒙 대응 논리와 '大國이미지' : 1231, 1232년 외교문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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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차 고려-몽골 전쟁을 전후한 1231, 1232년의 상황이 고려-몽골 관계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판단 아래, 이 시기 고려의 대응논리를 자세히 다뤄보고자 했다. 우선 이 기간 동안 모두 19통의 몽골 문서가 고려로 왔음을 유추해내었다. 약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19통의 문서를 몽골이 보냈다는 사실에서 몽골이 고려에 매우 적극적으로 외교 활동을 벌였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몽골은 국왕의 친조나 강화도로부터의 출륙을 항복의 증거로 요구하였고, 공물만이 아니라 인질, 군대의 동원, 호구 점검 등도 요구하였다. 여기에는 1231년의 1차 고려-몽골 전쟁과 뒤이은 고려의 강화도로의 천도가 큰 영향을 주었다. 전쟁 이후 몽골은 고려를 실질적인 복속국으로 보고 일방적인 의무를 이행할 것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고려가 몽골로 보낸 외교 문서도 18통에 달한다. 몽골의 요구 사항 변화로 유발된 고려-몽골 관계로 인해 표문 작성 방식도 기존과는 달리 화려한 수사보다는 직설적이고 안건이 나열되는 방식으로 변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몽골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이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몽골을 설득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 논리를 개발해냈다. 그것은 거란이나 여진과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던 사대외교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고려는 스스로를 몽골에 사대하는 존재로 낮추면서 몽골을 ‘대국’으로 대접하였다. 그리고 몽골에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주지시키면서 ‘소국’인 고려의 입장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당위를 강조하였다. 즉 몽골에 ‘大國이미지’를 입히려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적 문화전통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몽골에게 그러한 논리는 수용되지 않았다. 사대외교의 방식 안에서 움직인 고려의 이 시기 대응 방식은 한계가 분명했지만, 이 같은 노력으로 인해 기존과 같은 외교적 대응 방식으로는 몽골을 설득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이제 고려는 몽골에 대응할 새로운 틀을 요구받게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고려 - 몽골의 외교 교섭과 몽골의 요구사항
3. 고려의 對몽골 대응 양상
4. 고려의 대응 논리와 ‘稱臣’ 인식의 충돌 : ‘大國이미지’의 창출과 한계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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