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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虎俊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46號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39 - 60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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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대몽항쟁기 3차 전쟁 당시 고려와 몽골군의 공성전 양상과 죽주성 전투와 죽주성으로 비정되는 안성 죽주산성의 현황과 입보용 산성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먼저 대몽항쟁기 1~6차 전쟁 과정 속에서 3차 전쟁의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려는 몽골군의 1차 침략을 전통적인 淸野入保전술로 대항하였으나, 안북부에서 중앙군이 패배함으로써 실패하였다. 그 후 고려 정부는 강화로 천도하였고, 내륙의 백성들을 산성과 해도로 입보시켰다.
둘째 1차 전쟁 당시 귀주성 전투를 통해 확인된 몽골군의 공성전술은 기습, 포위 공격이었다. 3차 전쟁의 죽주성 전투에서도 귀주성 전투와 같은 공성전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고려는 1~3차 전쟁까지 기존의 양계 진성 및 각 도의 주현성에서 수성전을 진행하였다.
3차 전쟁 이후 고려는 1243년에 각 도에 산성권농별감 37인을 보내 군사적인 목적으로 성곽을 수축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5차 전쟁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몽골은 부몽세력을 앞세워 항전하는 방호별감과 고려민들을 회유협박하게 하였고, 고려를 공격하는 시점을 파종시기이거나 추수 수확기 이전으로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고려 영토 내에 1년이 넘게 주둔하면서 지속적으로 전투를 진행하였다. 죽주산성이 5차전쟁 당시 함락되었는지는 기록에 나오지 않으나, 양산성, 동주산성, 춘주성, 양주성, 양근성, 천룡성 등과 같은 주현성과 새로이 축성된 성곽은 함락되었다.
한편으로 몽골군은 6차 전쟁부터는 5차 전쟁 때와 같이 부몽자와 함께 공격시기의 변화와 체류기간을 1년여 넘게 지속하면서 고려군의 수성전술을 무력화 시켰다. 지금까지 함락되지 않았던 충주성이 도륙되었고, 충주지역도 원주지역과 동일하게 險山大城의 입보용 산성으로 이동해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원도 지역에서도 주현성에서 험산대성의 입보용 산성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러한 험산대성의 입보용 산성은 6차 침입과정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일대에도 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차 전쟁 당시 죽주성 전투와 죽주산성의 변화는 주현성에서 험산대성의 성곽으로 입보처가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을 정리해 보면 죽주산성은 한국 고대사뿐만 아니라 부족한 고려시대 문헌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역사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성곽임은 분명하다. 한편으로 3차 전쟁 당시 죽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송문주의 행적과 귀주성 전투의 기록을 통해 몽골군의 공성술은 1~3차 전쟁기간에 걸쳐 일정한 원칙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고려 대몽항쟁기 공성전 양상
Ⅲ. 고려 대몽항쟁기 州縣城의 변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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