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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군사 군사 제124호
발행연도
2022.9
수록면
89 - 131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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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수행하는 주체가 있고, 그 행위는 주체의 특성을 반영한다. 몽골이라는 주체는 전투를 수행함에 있어 포로 등 인적자원을 중요하게 활용하였다. 그렇기에 여러 지역에서 ‘大城’을 공략하기 전에 먼저 ‘小郡’을 공격하여, 軍民을 포로로 취하는 행적을 보였다.
몽골이 향후 한반도 남부로 진격해 나감에 있어, 처인부곡은 인적자원을 비교적 쉽게 편취할 수 있는 ‘小郡’이었다. 이미 광주성에서 인적・시간적 손해를 떠안은 撒禮塔軍은 여러 ‘小郡’을 장악해 인적자원을 재수급해야 했다. 하지만 처인성에서 撒禮塔은 전사하였고, 전쟁의 한 분기가 종결되었다.
처인성은 국가적으로 운영하고자 했던 거점이 아니었다. 특기할 만한 사안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저 몽골이 殘滅하고 지나간 여러 지역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승전으로 인해 고려 정부에게는 처인성 전투 중심의 전황 이해가 강제되었다. 그리고 얼마든지 방어체계에서 유리된 이들이 군집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처인성 전투 이후 고려 정부는 항전 역량을 보장할 수 있으면서도, 인적 자원 보호를 강화하는 기조에서 방어 방침을 보완하고 있다. 처인성 전투가 가져온 반향이자, 해당 전투의 또 다른 의의이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撒禮塔軍과의 전쟁 추이와 廣州牧 일대의 조건
3. 몽골의 전술과 처인성 전투의 발발 요인
4. 고려의 방비 보완 기조와 처인성 승전의 반향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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