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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종오 (한국교통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5호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351 - 390 (40page)
DOI
10.37331/JKAH.2024.09.11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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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옥천 이성산성의 문헌 및 연구사 검토와 고고학 발굴조사 성과를 중심으로 역사고고학적 함의를 살펴본 것이다.
옥천 이성산성은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토성유적이다. 『三國史記』에 따르면 三年ㆍ屈山의 두 성을 소지마립간 8년(486)에 개축하였다고 하는데, 그중 굴산성이 옥천 이성산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즉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초축한 보은의 삼년산성과 함께 옥천의 굴산성을 16년 후에 고쳐 쌓았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고대 성곽사에서 문헌사료와 고고자료가 부합하는 희소한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인근에 위치한 同시기의 삼년산성은 둘레 1,700m의 거대한 석축산성으로 높이 15~20m의 석축성벽, 현문식 성문, 곡성, 기단보축 등 그 축성술은 한국고대 석축산성의 편년 중 5세기 후반의 표지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굴산성은 둘레 1,140m의 판축토성으로 축조재료 및 축조방법에서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가 있다.
이 같은 차이에 대해 시기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지역적인 문제인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연구사 검토 및 고고학 조사 결과 등 학술 성과의 再考가 부재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토축성벽의 사례로는 보은 삼년산성 남벽 내측 구간의 5세기 후반~6세 기대 판축성벽, 단양 적성 서벽 내측 구간의 6세기 중반대 판축성벽, 그리고 7세기 전반에 조성된 부여 부소산성 포곡식산성 북벽부와 군창지테뫼식산성의 동벽 및 동남벽 연접부 그리고 사자루테뫼식산성 북벽부 등이 있다. 이외 공주 공산성, 세종 이성, 강릉 강문동토성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지상의 육축구조물인 성곽은 토축성에서 석축성으로 발전되었으며 그 과도기에 외면에 축석하는 ‘토축외면축석양식’ 또는 ’토축외면축석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옥천 이성산성 발굴조사에서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한국고대의 성곽이 세계사적인 보편성에 맞추어 축조 재료와 규모, 축성법 등에 있어서 순차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옥천 이성산성은 후대의 연용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대의 판축토성이 온전하게 남을 수 있었다. 그 결과 5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까지 삼국간의 역동적인 각축 현장을 복원하는 또 다른 지표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고고학적 가치와 의미는 지대하다고 판단된다.

목차

국문 초록
I. 머리말
II. 已城山城의 연구 성과
III. 已城山城의 역사고고학적 함의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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