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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경호 (서울역사편찬원)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65호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171 - 224 (54page)
DOI
10.17647/jss.2016.11.65.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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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고종대(1863~1907)의 한성판윤의 명단을 본관, 취임 당시의 나이, 재임기간, 재직 전후 관직 등을 분석하고, 더불어 그들의 재임 기간에 한성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고종 친정 이전에는 안동김씨가, 고종 친정 이후에는 여흥민씨가 주로 한성판윤을 맡았다. 그런데 전주이씨는 갑오개혁 이전 전 시기에 걸쳐 한성판윤을 맡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주이씨는 한성판윤에 자주 임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임기간도 길었다. 이 외에 한성판윤에 여러번 임명된 인물들 중에서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변원규와 이승오를 들 수 있겠는데, 이들은 청나라의 간섭이 가속화 되던 시기에 자주 재임했던 인물들이다.
고종대 한성판윤은 갑오개혁 전후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전주이씨, 안동김씨, 여흥민씨가 주도하던 갑오개혁 이전과는 다르게 이 시기의 한성판윤은 그 출신이 불분명하거나 양반이 아닌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이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이전 한성판윤 보다 2배 길었고, 평균 연령대도 10세 이상 젊은 인물들 이었다. 이채연을 비롯한 젊은 한성판윤들은 재임하면서 외국인과의 갈등 처결, 도시개조사업, 법률문제해결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했다. 때로는 외국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대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을사늑약이후 한성판윤의 직임은 낮아지고 독단적인 대처를 찾아볼 수는 없게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종대 한성판윤의 위상
Ⅲ. 갑오개혁 이전의 한성판윤과 특징(1863~1894)
Ⅳ. 갑오개혁 이후의 한성판윤 성분과 역할 변화(1894~1907)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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