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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회 한국근대문학연구 한국근대문학연구 제17권 제2호(통권 제34호)
발행연도
2016.10
수록면
173 - 208 (36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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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귀국한 후의 이용악 시들은 훗날 시집 『오랑캐꽃』(1947)에 수록되지만, 그간의 연구들은 『오랑캐꽃』 · 『절라도 가시내』 · 『강ㅅ가』 등만을 논함으로써 일제 말기 그의 시세계에 대한 전체적 조감에 이르지 못해 왔다. 특히 이 시기의 시들을 ‘자기 파탄’의 퇴행으로만 여겨온 경향이 강했는데, 본고는 이 같은 일면적 접근보다는 자기 파탄과 친일을 극복한 다면적, 과정적, 역동적 측면을 밝힘으로써 신체제기 이용악 시의 새로운 이해를 도모하였다.
귀국 후 이용악은 총후국민 창출에 앞장선 『인문평론』에 몸담게 되면서 그로 인한 자기 모순과 환멸의 언어들을 1940년 초부터 내놓는다. 그러나 슬픔과 우울, 외로움과 무기력, 부끄러움과 죄의식, 비관과 절망, 자조와 자학 등의 ‘자기 파탄적’ 시들이 오래간 것은 아니다. 1940년 6월부터 2인칭의 ‘당신’ 찾기로 나아간 그의 시는 함북 경성의 고향을 통해 공동체적 타자(“옛적 사람들”)까지를 찾는다. 고향은 폭력과 죽음이 난무한 북방의 전장을 대체할 생명력의 공간으로 이상화된다.
이처럼 고향의 재발견을 통해 서울에서의 자기 모순과 환멸감을 견뎌나가던 그의 시가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 시점은 1941년 중반부터로 볼 수 있다. 『인문평론』이 폐간되자 일종의 해방감 속에서 고향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을 더욱 열망한 그는 실제로 1941년 8월 전에 낙향한 것으로 보인다. 귀향 후에도 한동안 그에게 고향은 “아무러케 불러도 즐거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고향에서의 충일감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이는 전근대적인 고향에 대한 실망과 함께 싹튼 서울 지향주의 때문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곧이어 발발한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남방을 향한 그의 동경이 서울을 넘어 일본 군국주의의 진출지인 남태평양으로까지 확장된 점에 있다. 따라서 1942년 3~4월의 친일시들은 「지도를 펴노코」에서 보듯 남방 일대의 전시 스펙타클을 향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몇몇 친일시를 쓰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용악은 “南方엘 가지 않으련다”는 다짐으로 친일 욕망을 이내 회수하면서 절필을 통한 침묵의 저항으로 나아갔다. 마지막 발표작 「항구에서」는 “갈바리의 산”과 함께하는 묵시록적 순교 의지를 통해 “즘생처럼 우는 뱃고동” 소리의 독립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였다.

목차

1. 서론
2. 일인칭 내면의 자기 파탄과 타자로의 시적 전환
3. 고향의 재발견과 『인문평론』 폐간 후의 귀향
4. 태평양전쟁의 ‘南方’을 향한 관심과 친일 욕망의 회수
5.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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