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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수태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82집
발행연도
2016.6
수록면
91 - 13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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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사로국이 진한의 맹주로 등장한 시기의 대외교섭을 알아보고자 한다. 신라외교사연구에서 그동안 3세기대 진한의 대중국 관계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삼한의 대중국관계를 기록해주고 있는 『삼국지』나 『진서』의 내용을 백제사 혹은 마한사를 중심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3세기대 진한의 대중국 관계가 신라사 속에서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드러날 수 없었다.
진한의 대군현 및 대서진 교섭은 한국고대사에서 대외교섭이 어떠한 단계로 변화 발전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진한은 위나라와의 직접적인 교섭보다는, 군현과의 간접적인 교섭을 주로 했다. 그리고 서진대에는 군현보다 상위에 있으며, 군현을 관할하는 기구가 있는 중국 본토로까지 대외교섭을 확대시켜 나갔다. 이후 4세기 후반인 나물왕대 신라는 중국의 황제가 머무는 수도로까지 왕래하면서 이제 교섭이 아니라 외교를 전개하였던 것이다.
한편 진한은 중국을 만날 수 있는 이러한 교섭기구를 통해서 삼한의 역관계를 새롭게 하려고 하였다. 진한은 낙랑군을 통해서 마한을, 마한 역시 대방군을 통해서 진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계속 두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진한은 군현을 관할하고 있는 중국 본토에 있는 상부기관으로까지 대외교섭을 새롭게 전개하면서 상호관계를 변화시켰다. 그 결과 진한과 마한의 관계는 상호 공존하는 화친의 방향으로 정립되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진한의 대위군현 교섭
Ⅲ. 진한의 대서진 교섭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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