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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85호
발행연도
2017.3
수록면
415 - 445 (31page)
DOI
10.37331/JKAH.2017.03.8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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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신라 중대 王母의 칭호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왕모의 위상과 역할이 정립되어가는 과정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중대 왕모의 칭호와 위상을 구현한 사례로서 중대의 마지막 왕모인 만월태후를 주목하였고, 이를 통해 왕모의 칭호와 위상, 그에 따른 정치적 역할을 고찰하였다.
신라 중대의 왕모의 칭호는 시호로서의 ‘태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夫人과 王后였다. 이는 신라 중대에 왕후가 ‘正妃’로서의 위상을 정립하였고, 이에 따라 왕실여성의 위계 내에서 왕후가 가장 높은 지위를 점하게 된 결과이다. 이처럼 중대에는 당의 후비제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고, 신라 내부의 정치역학상의 필요에 따라 왕후의 지위가 제도화되었다. 이는 제도 외적인 존재인 태후의 위상과 역할을 변화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만월은 ‘夫人’, ‘王后’, ‘太后’의 칭호와 더불어 당으로부터의 책봉호인 ‘大妃’의 칭호를 칭하였다. 만월은 왕태자의 출산과 책봉으로 인해 비로소 왕후 책봉을 받았으리라 여겨진다. 이후 만월은 어린 혜공왕이 즉위함에 따라 왕의 어머니인 태후로서 섭정을 하였다. 만월이 섭정하는 동안 신라 내부에서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만월은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대외적으로 당과의 외교를 통해 섭정으로서의 지위를 공인받고자 하였다. 그 일환으로 신라왕의 어머니로서 ‘大妃’의 책봉을 받았던 것이다. 또한 대내적으로 신라 내부의 정치세력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였다. 그 일환으로 주조가 완성된 것이 〈성덕대왕신종〉이었다. 이를 통해 만월은 왕위의 정통성을 강조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섭정체제를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만월은 혜공왕의 모로서 왕후로 공인받았고, 태후로 섭정을 하였다. 만월은 섭정기간 동안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여야 했다. 이는 성덕왕-경덕왕-혜공왕으로 이어지는 왕통의 정통성을 강조함으로써 가능하였다. 만월은 왕모로서 왕실의 정통성을 지키는 정치적 역할을 자임하였던 것이다. 신라 중대에 ‘왕후’의 위상이 정립되었고, 이는 왕모인 ‘태후’의 위상 및 역할과 연동되었다. 중대의 왕실여성은 대왕의 배필인 ‘왕후’로서 정치적 위상을 갖게 되었고, 왕의 어머니인 ‘태후’로서 왕실의 정통성을 保持하는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중대 王母의 칭호와 위상의 정립
Ⅲ. 만월태후의 칭호와 정치적 위상
Ⅳ. 만월태후의 섭정과 왕모의 정치적 지향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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