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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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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58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135 - 170 (36page)
DOI
10.15299/jk.2016.2.58.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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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세기 추사와 중인 제자들이 청대 성령파 거두 원매의 시학을 수용한 양상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 결론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김정희는 성정을 토로하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유가 溫柔敦厚의 미적 원칙을 여전히 고수하였다. 이에 그는 원매를 인식하고 수용할 때 원매의 시학이론 중에 含蓄化와 功利化의 요구와 맞지 않는 부분을 격조로써 裁整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김정희는 격조론의 미적 원칙을 지켰지만 격조론의 창작 원칙을 완전히 저버렸다. 그의 제자 조희룡은 원매의 영향을 받았으니 모두 격조론에서 강조했던 定格 사유를 타파하여 시가 창작의 典範性과 唯一性을 지양하고 시가 격식과 풍격의 다양성을 지녀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 自我表現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추사와 제자들이 원매와 똑같은 지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시가 격식과 풍격의 다양화를 강조하지만 그 최종 목적은 여전히 자신 일가의 풍격을 세우는 데에 있다. 그래서 그들의 시론에서는 시인의 개성과 독창성을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시가 창작과정의 자연성을 주장했다는 것도 같이 발견할 수 있다.
그 다음, 명대 공안파에서 제창했던 創新의 내포를 다시 정의하는 측면에서 추사의 중인 제자들은 원매와 똑같이 創新은 옛것을 맹목적으로 배척하여 新과 奇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정수를 잘 변별해서 흔적 없이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 수단도 원굉도의 棄古에서 벗어나서 원매의 化古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추사와 중인 제자들이 원매의 시학 이론을 수용했다는 것을 보면 18세기 이래 조선에 수용되는 명대 性靈 시학은 19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도전과변화를 맞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문인이 옛것을 배우는 태도와 방식,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수단은 이미 이전과 다르게 변하였다. 다시 말하면 19세기에서 性靈 시학의 내포는 다시 정의되었다. 물론 이런 변화 과정에서 청대 성령파 원매 시학 이론의 수용은 그 전환점이 된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김정희의 원매 시학 인식
3. 格調의 구속을 타파함
4. 自我表現을 강조함
5. 創新을 다시 정의함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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