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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인호 (광운대)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58輯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123 - 15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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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은 조선정부가 고려 국왕 및 공신들을 제사하기 위해 경기도 마전현에 마련한 기구이다. 이곳 숭의전에는 관리와 제사를 맡은 숭의전사를 비롯한 관직자와 토지, 노비 등을 두었다. 숭의전은 조선초기 태조묘에 기원을 둔다. 이 태조묘는 왕우가 유교적 명분에 따라 끊긴 왕조의 제사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이곳에는 고려의 혜종, 현종, 원종, 충렬왕, 성종, 문종, 공민왕의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법제화되었다.
태조묘는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과 왕우의 사망하여 변화였고, 이후 조선정부는 마전현에 사당을 세우면서 이를 중사(中祀)에 편입시켰다. 또한 제사대상은 태조, 현종, 공민왕만을 제외하고 없애 버렸다. 태조묘의 사전 등재는 제사 주체가 국가에 있음을 보여준다.
태조묘의 제사방식은 『세종실록』의 수록된 「오례의」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숭의전은 문종대에 체계를 갖추면서 왕씨 후손을 찾아내 제사를 맡겼다. 제사에는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가 향과 축문을 가지고 갔다. 이는 제사의 국가 참여와 간섭을 보여준다. 아울러 왕씨 후손 왕우지는 숭의전사에 임명되었으며, 성씨를 임씨로 변경하도록 조치하였다.
세조는 왕우지에 대한 관심으로 2품관의 위상으로 대우하였지만 이후부터 중앙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왕씨 후손이 없는 경우에는 중앙정부가 파견한 관리가 헌관이 되어 제사의 주체가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숭의전에 대한 관리와 제사는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숭의전 제사에 대한 관심은 영조대에 다시 부활하였다. 영조는 중앙관료를 파견하고 다시 왕씨 임용에 노력하였다. 그렇지만 곧이어 왕씨 임용은 사라지고, 고종대에는 다른 시조묘와 동일한 지위가 되었다. 이는 조선왕조의 숭의전에 대한 대우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숭의전의 설치 과정과 제사
Ⅲ. 숭의전의 변화와 제사 방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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