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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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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78호
발행연도
2005.6
수록면
111 - 14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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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은 마전현에 있는 고려 태조묘를 바탕으로 한다. 이곳의 왕씨 제사는 조선 건국 직후에 발의가 되었다. 이는 고려왕족들에 대한 정치적 축출 전후에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왕씨 제사는 유교적 명분론에서 찾았다.
조선정부는 이를 통해 고려왕조의 정치적 정통성을 계승하고, 신왕조 개창에 반대했던 세력을 무마시키려고 했다.
태조대에 국가제사로 출발한 숭의전은 태종대 이방원 계열의 집권으로 보다 체계화하였다. 이들은 국왕 아래의 일원적이고 피라미드적 체계로 구축하기 위해 節義와 忠誠을 강조했다. 세종대에는 사전편제에서 中祀로 정해졌으며, 전체 8위 신주를 제사하는 것에서 4위로 축소되었다. 이후 문종은 즉위 후에 세종의 뜻을 받아, 고려왕손을 찾아내는 한편, 숭의전을 체계화하였다. 이 때 찾아낸 고려왕손 왕우지는 왕순례로 이름을 개칭하였고, 崇義殿副使로 임명되었다.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한 세조는 숭의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는 숭의전부사 왕순례의 위상을 4품관에서 2품관으로 상향시켰다.
원래 고려 태조묘에 8위(태조, 혜종, 성종, 문종, 현종, 원종, 충렬왕, 공민왕)가 배향된 것은 조선 태조 6년에 간행된 『元六典』부터 였다. 배향된 군주를 통해 조선초기 집권층의 역사인식을 볼 수 있다. 이는 정도전의 저술인 『경제문감』 별집 군도편에서 보면, 각 국왕의 인품, 업적, 평가 등을 중요한 지표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평가는 고려시대 李齊賢과 『고려국사』 편찬 당시의 史官의 그것을 계승한 것이다.
고려국왕은 업적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단, 혜종, 원종, 충렬왕, 공민왕은 부정적 평가가 섞여 있었다. 후자의 문제는 주로 군주 수양의 문제였다. 그 선정에 작용한 역사인식은 8명의 국왕이 왕조 창건 내지 위태로운 시기에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후 태종대에는 3위 봉사(태조, 현종, 공민왕)로의 축소가 논의되었고, 이것은 『속집상절』에 수록되었을 것이다. 이 3위 봉사안이 『세종실록』 「오례의」에 올라가기 때문이다. 고려태조묘는 당시 中祀로 편제되었다. 3위 봉사에서 주안점은 대외관계에서 역량을 발휘한 국왕을 선정했다. 이는 온건보수적이던 이색 계열의 인물들이 정계에서 중요 인물로 등장하고, 이들의 사회체제의 명분확립과 안정화라는 목적의식에 맞는 것이었다. 이후 태종 16년에는 다시 8위 봉사로 전환되었다.
세종대에는 『신속육전』에서 4위봉사(태조, 현종, 문종, 원종)로 변화하였다. 조선의 종묘가 5묘제라는 점에서 사전체계의 등급화라는 명분 때문이었다. 선정된 군주들은 수성기에 맞는 인물들이었다. 이처럼 숭의전에 배향된 군주들은 조선전기 사대부들의 고려사 인식과도 일정한 연관을 지닌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숭의전 성립과 정치적 배경

Ⅲ. 법제화와 역사인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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