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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민호 (중국 연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 제47호
발행연도
2015.3
수록면
385 - 41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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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기원한 농악은 조선인의 중국이민과 더불어 간헐적으로 동북3성에 유입되다가 1930년대 중후반 일제의 ‘집단부락’건설을 계기로 중국 땅에 정착하게 된다. 초기에는 한반도의 거의 모든 농악이 유입되었으나 각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서로 뒤섞여 살았던 관계로 지역적 특징이 선명하지 못했다.
1951년 8월, 조득현에 의해 무대예술화한 『농악무』가 탄생하면서 조선족농악은 한반도와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체제와 시대정신을 반영한 농악무는 문화관-농촌구락부-아마추어극단으로 이어지는 행정라인을 통해 신속하게 연변 각지로 전파되었고, 이와 동시에 연변예술학교 · 연변가무단 · 연변군중예술관 등 문화기관을 통해 연변은 물론 전 동북지역에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다. 획일화된 보급과정을 통해 전통농악은 점차 연변의 농악무로 대체되고,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꽹과리를 포함한 타악기마저 농악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개혁개방이후 무대예술화한 농악무가 끊임없이 창작되는 동시에 광장농악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여 21세기에 이르면 ‘천인농악무’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2005년 시행되기 시작한 무형문화유산정책은 조선족농악무를 조선족의 상징, 위대한 예술로 승화시켰고, 이와 동시에 전통으로의 회항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했다.
일부 학자들은 상모춤 중심의 농악무가 자칫 민족고유의 장단과 즉흥적인 정서를 묵살할 수 있다고 보면서, 농악무가 아닌 농악의 차원에서 전승 ·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중국조선족농악이 전부 농악무화 된 것은 아니다. 근래 안도농악의 궐기는 중국에서 전통농악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농악의 유입과 정착
3. 농악의 무대예술화와 재민간화: 중국조선족농악무의 탄생과 좌절
4. 농악무로의 획일화: 개혁개방 이후의 새로운 시도와 변화
5.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농악무: 전통으로의 회항과 저변의 확대
6.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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