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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인섭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법사학회 법사학연구 法史學硏究 第51號
발행연도
2015.4
수록면
137 - 177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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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하 대표적인 항일변호사로 꼽히는 김병로의 1930년대 변론활동의 전개를 살펴본 것이다. 김병로는 1930년대 초 신간회의 해산, 변호사정직처분 등의 위기를 겪으며, 자신을 재정비하여 1930년대 항일변론을 본격화한다. 이인 변호사와 청진동에서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1941년까지 항일변론을 주도하게 된다.
이 시기에 그가 한 변론으로는 안창호 사건, 조용하 사건, 경성제대 반제동맹 사건, 박헌영 사건, 이재유 사건, 동우회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안창호 사건, 동우회 사건을 제외하고 김병로의 주요 변론을 살펴보았다. 다만 이 시기에는 보도통제가 강화되어 그 구체적인 변론내용이 직접 소개되어 있지 않기에, 추론적 접근을 꾀하였다.
김병로가 이 시기에 한 사건은 주로 ‘사상사건’이고 지도적 공산주의자에 대한 변론이 적지 않았다. 그는 대표적인 ‘사상변호사’ ‘좌경변호사’로 일컬어졌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다수는, 수사자료, 일제 관헌의 문건, 법정진술 등을 통해 볼 때 민족주의를 바탕에 깔고 거기에 공산화로 더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김병로는 독립민족국가를 쟁취하자는 공통목표를 갖고 있다고 보았고, 자신의 변론은 그들과 공동전선을 펴는 것으로 이해했다. 때문에 그는 좌/우를 막론하고, 동지적 입장에서 변론을 전개했다.
기존의 김병로 연구에서는 김병로의 창동 이사(1930년대 초반) 이후에 변론활동을 덮고 ‘은거’ ‘수절’했다고 정리하고 있으나, 자료와 증언에 입각해볼 때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20년대보다 어려워진 여건 하에서도 그의 항일변론활동이 가열차게 전개됨을 확인한 점은 본고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목차

[국문 요약]
Ⅰ. 글머리에
Ⅱ. 김병로 - 이인의 합동법률사무소 시대
Ⅲ. 조용하 사건의 변론
Ⅳ. 경성제대 반제동맹사건 변론
Ⅴ.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활동에 대한 변론
Ⅵ. 이재유와 공산당재건운동사건 변론
Ⅶ. 사상변호사와 공산주의자의 관계
Ⅷ.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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