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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범환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45집
발행연도
2015.6
수록면
97 - 12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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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05년에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 복장에서 발견된 묵서명을 새롭게 판독한 다음 누구들이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단월이었으며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하였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검토한 결과를 간단하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우측 묵서명 맨 아래 두 글자의 판독이 어려웠으나 검토한 결과 그것은 ‘事也’로 쓰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을 마치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묵서명 전체가 楷書로 쓰여 있으나 두 글자만이 초서로 쓰여 있는데, 이는 공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묵서명에 쓰인 大角干은 기왕에 알려진 것처럼 魏弘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죽은 자를 추복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것이라면 이 때 위홍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비는 眞聖王이 아니다. 그 이유는 제작 년대가 진성왕이 활동하던 시대와는 너무 앞서고 있기 때문이며, 여왕이 되기 이전이므로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넷째로 憲康王이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목적은 그의 祖父와 祖母를 추복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렇게 한 것으로, 묵서명에 보이는 大角干은 金啓明이고 妃는 그의 처인 光和夫人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경문왕으로 이어진 왕실의 영원함을 기원할 필요성에서 이와 같은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로 헌강왕이 해인사에 이와 같은 불사를 주관하게 된 계기는 崔致遠의 母兄인 賢俊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신라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헌강왕 사후에는 그를 위한 불사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묵서명에 대한 검토
3. 묵서명에 보이는 大角干과 妃에 대한 검토
4. 비로자나불 조성 세력과 의도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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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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