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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광식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67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213 - 23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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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국가가 형성되면서 왕궁을 조성하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왕경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상고기에는 시조묘와 신궁, 그리고 소위 ‘전불칠처가람’이라고 불리는 신성지역이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중고기에 불교가 수용되고 토착신앙의 신성스러운지역에 사찰이 들어서면서 처음에는 서천가의 흥륜사가 중요시되다가, 진흥왕대에 황룡사를 신축하면서 왕경의 중심이 황룡사를 중심으로 조성되고 분황사, 미탄사 등이 동천(東川) 가에 조영되어 동쪽으로 중심이 이동되고, 황룡사는 호국사찰로서, 분황사는 정토신앙의중심 사찰로서 왕경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중대에는 북천(北川)가에 봉덕사와 봉성사 및 봉은사 등 성전사원이 조성되어 왕실의 원찰 기능을 하면서 호국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왕경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남천(南川)가에는 담엄사와 인용사 등이 조영되어, 월성을 중심으로 동천ㆍ서천ㆍ남천ㆍ북천의 사천(四川)가에 사찰이 조영되어 왕경을 위호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왕경의 택지선정과 건축부재의 조달 등을 감안하면 천변이 공간 확보에 유리하였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면도 있지만 유교식 건물이 아닌 불교 사찰이 조영되었다는 것은 불국토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통일전쟁 직후 월성의 동단에 동궁과 월지가 조성되었으며, 북쪽에는 용강동 원지유적인 북원궁(北園宮), 남쪽에는 포석정 주변의 남도원궁(南桃園宮), 동쪽에는 구황동 원지유적인 청연궁(靑淵宮), 서쪽에는 수궁(藪宮) 등 왕경과 그 외곽지역의 경계 지역에 원지를 조성하여 이궁을 조성하였다. 이는 제의와 휴식의 공간으로 신선이 되고자 하는 신선사상 및 도교적인 이상향을 추구하는 신라인들의 로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왕궁은 유교적 예제에 의해건축하고, 왕경의 주위와 핵심지역은 불교 사찰이 들어서서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고, 왕경의 경계 지역에는 도교적인 이궁을 조영하여 유교와 불교 및 도교를 아우르는 유ㆍ불ㆍ선의조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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