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최치원이 신라로 돌아온 이후에 창작한 시의 변화와 특징을 그의 귀국 후 생애와 관련지어 살펴본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최치원의 현존시는 모두 126수로, 그 중 37수가 최치원이 귀국한 후에 지은 시이다. 귀국 후 첫 번째 시기는 최치원이 귀국한 헌강왕 11년(885) 3월부터 정강왕이 서거한 887년 7월까지이다. 이 시기는 최치원이 헌강왕의 환대를 받으며 귀국 한 후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포부를 펼칠 준비를 하던 희망 가득했던 시기이다. 하지만 헌강왕과 정강왕의 죽음으로 그들의 지지가 사라진데다가 자신을 견제하고 배척하는 귀족들이 많아지자 결국 외직으로 나가게 되며 그 희망과 포부는 점차 좌절로 바뀌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37수의 중 이 시기에 창작된 시는 2 수이다. 귀국 후 두 번째 시기는 진성여왕이 즉위한 이후(887년 7월)부터 최치원이 아찬에서 물러난 효공왕 2년(898년 11월)까지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신라가 점차 파국을 향해 치달으며 지방각지에서 민란과 반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로 최치원은 외직을 전전하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시는 모두 20수이며, 그 시들에는 최치원의 애국ㆍ애민정신이 담겨져 있거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포부를 접으며 체념하게 되는 양상을 띤다. 귀국 후 세 번째 시기는 최치원이 아찬직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908년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 최치원은 은거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세간과 완전히 격리되었던 것은 아니므로 ‘소극적 은거시기’라 칭한다. 이 시기에 지은 시는 모두 6수로, 대부분 속세와의 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거나, 온전히 탈속하고자 하는 열망과 결단을 담고 있으며, 그것이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좀 더 절실히 표출되었다. 909년부터 최치원은 속세에서 좀 더 멀리 벗어나 점차 달관의 경지, 탈속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 시기를 귀국 후 네 번째 시기인 ‘적극적 은 거시기’라 칭한다. 이 시기에 지어진 시는 모두 9수이다. 이 9수의 둔세시에는 속세를 온전히 벗어나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 한국 전원시의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