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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식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26집
발행연도
2007.4
수록면
273 - 30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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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일본의 조선 문제에 대한 정치과정은 3?1운동을 전후한 일본 정부내부의 대립과 타협을 담고 있다. 식민지조선의 지배체제는 3?1운동을 기점으로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정책전환은 식민지 조선 민중의 3?1운동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다. 또한 이것은 일본정치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었다. 이 시기는 야마가타벌을 비롯한 번벌세력이 정치적으로 후퇴하고, 하라 다카시의 정당세력이 대두한 때이기도 하였다. 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총독의 후임인사로 사이토 마고토가 결정되기까지 복잡한 정치과정을 거쳤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조선에서의 군부지배를 계속하기 위해, 하라는 조선에서의 육군지배를 약화시키기 위해 각각의 입장에서 해군 퇴역장군인 사이토를 선택했다. 총독인사문제를 결정한 이후 조선총독부 관제개혁이 중심적인 문제로 부상했다. 관제개혁의 결과 야마가타벌과 육군의 실제적인 조선지배에는 그다지 변화가 보이지 않았고, 하라 내각총리대신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갖지 못했다. 결국 하라는 미즈노 렌타로 정무총감 기용으로 조선개혁의 인적 기초를 장악하였다. 또한 미즈노은 군령에 의한 무관총독의 군대통솔권을 배제하여 조선통치에서 군부를 배제하려고 하였다. 미즈노은 인사권과 군부배제로 조선개혁의 기초를 만들었다. 불완전하지만 하라는 미즈노을 통하여 식민지조선에 대한 문화통치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사이토 마고토(齋藤實) 총독인사
3. 조선총독부 관제개혁의 정치과정
4. 정무총감 미즈노 렌타로(水野?太?) 인사
5. 결론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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