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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方琪喆 (건국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29집
발행연도
2008.4
수록면
211 - 24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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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중기 사상계를 대표했던 인물인 栗谷 李珥의 대일인식을 조선과 쓰시마 섬(對馬島)간의 통상에 관한 입장, 대일국방강화론 등을 통해 구명한 것이다.
당시 조선은 일본인의 거듭된 소요사태에도 불구하고 쓰시마와의 통상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율곡은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조선 정부와 백성들이 공식적으로는 쓰시마와의 무역을 통해, 비공식적으로는 왜구의 침입 등으로 이중 부담을 안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 외 쓰시마가 겉으로는 조선의 藩屛을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 일본의 척후일 것이라는 강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었다.
쓰시마에 대한 불신감은 일본의 침입에 대한 염려로 이어졌다. 때문에 율곡은 수군제도의 개혁, 板屋船의 건조 등을 통한 대일국방강화를 적극 주장하였다. 이처럼 그는 일본을 경계하여 국방강화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일본에 대한 무력정벌 등과 같이 군사행동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왜구가 변방을 어지럽히거나 일본의 침략이 있을 경우 해상에서 이를 격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이유는 당시의 정치?사회?경제 등에서의 실리적 관점과, 일본은 오랑캐지만 힘이 아닌 덕으로 감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율곡의 대일인식은 기본적으로 華夷論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는 조선의 문화를 중국과 대등한 것으로 여긴 반면, 일본은 섬 오랑캐[島夷]에 불과하다고 夷狄視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당시 율곡과 함께 조선의 사상계를 주도했던 退溪 李滉?南冥 曺植과 동일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대일외교정책은 퇴계나 남명 보다 현실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개방적 학문자세, 중앙과 지방에서의 다양한 정치실무 경험과 외교활동 등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對馬島와의 통상단절론
3. 대일국방강화론
4. 대일인식의 특징과 배경
5.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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