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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류시현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인물사연구회 한국인물사연구 한국인물사연구 제10호
발행연도
2008.9
수록면
359 - 39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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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시기 ‘新大韓’을 건설할 주역으로 ‘新靑年’이 주목되었고, 이들 ‘신청년’이 국민국가 수립에 기여할 근대적 지식을 얻는 주된 경로는 일본 유학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일본 유학기간에 습득한 근대적 지식을 그들 자신의 실천 활동에서 적용하고자 했고 이와 병행해서 뒷 세대 청년과 소년층에 출판 및 저술활동을 통해 그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들 동경 유학생 가운데 주목받은 3인이 있었고, 이들을 ‘東京三才’라고 불렀는데,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를 가리켰다. ‘아시아의 런던’이라고 불리던 일본 동경에서 유학했던 이들 3인은 학교 및 서점ㆍ도서관 등을 통한 근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다양한 분야에서 조선의 ‘문명화’를 이루는 영역에서 활동했다. 홍명희는 1888년, 최남선은 1890년, 이광수는 1892년에 태어났으며, 이들 3인은 각각 2살 터울이었다. 비슷한 연배의 이들은 한말 일제 초 일본에 유학을 했던 경험이 동일했으며, 문학의 영역에서 활동을 한 공통분모를 지녔다.
귀국의 시점에서 홍명희는 자연주의 문학 영역에서, 최남선은 역사와 조선문화 영역에서, 이광수는 문학과 사회 평론의 영역에서 장점을 지닌 존재였다. 이들 ‘동경삼재’의 본격적인 활동은 식민지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 귀국과정 및 국내에서의 이들의 활동 폭은 이러한 현실에 의해 제한되거나 굴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동경삼재’는 일제에 의해 병합된 시기를 전후해서, 자신들의 역할을 스스로 부여하고 교육과 언론 영역에서 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습득한 근대적 사고와 물질적 영역의 성과를 조선에서 실현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들 동경삼재는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하고 외국을 ‘방황’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들은 윗세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존재로서 자신들을 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유학시절 경험했던 민족주의적 각성을 토대로, 이들 ‘동경삼재’는 1919년 전민족적 항일운동인 3ㆍ1운동의 과정에서 주역의 역할을 담당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동경삼재’의 신학문 수련과정
Ⅲ. 일본 유학시절의 근대 문명ㆍ문화 체험
Ⅳ. 문명ㆍ문화 기획의 굴절과 민족운동 참여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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