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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창섭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30호
발행연도
2008.2
수록면
77 - 10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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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초에 동여진이 동해 일대의 여러 지역을 공격하여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위협하였다. 당시 이같이 동여진 해적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해적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삼국 쟁패기 이래 동해 일대에 배치되어 있는 무력이 없다시피 했으며, 후삼국 통일 후에도 고려가 거란, 송과의 관계에 주로 관심을 갖고, 동해 주변의 국가 또는 집단에게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세기 이래 동해에는 武力의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존재가 없었던, 힘의 공백 상태가 있었다. 이 틈을 타서 동여진 해적이 세력을 확장하였고, 이들은 해적선을 타고 동해를 통해 고려를 침공하였다. 해적의 세력 확대는 고려의 변경을 위협하는 주된 문제로 점차 바뀌어갔다.
고려는 목종 8년(1005)부터 본격적으로 해적의 침공에 대응하였다. 고려는 우선 동해안의 요충지에 성곽을 축조하여 방어를 꾀하였고, 해적을 해상에서 물리치기 위해 수군 배치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목종을 이은 현종도 목종대의 정책을 계승하여 현종 3년(1012)까지 동해안 일대에 성을 쌓았고, 수군을 본격적으로 배치하였으며, 이 지역의 수군을 관할하는 기구인 진명도부서를 설치하였다.
이처럼 고려는 해안 각지에 방어 거점을 만들고, 수군을 양성하여 해적들의 침범을 해상에서부터 차단하려 하였다. 동여진 해적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처한 결과 고려는 동여진 해적의 활동을 둔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현종 3년(1012) 5월에 경주 일대를 침입하다 실패한 이후 동여진 해적은 고려를 더 이상 자유롭게 공격하지 못하고, 대신 공격 대상을 우산국, 일본으로 넓혔다. 반면 목종 8년~현종 3년까지의 적극적인 대처로 고려는 한동안 동여진 해적의 침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1세기 초 동여진 해적의 등장
3. 고려의 대처 방안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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