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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형호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비교민속학회 비교민속학 比較民俗學 第43輯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537 - 56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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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장치기놀이가 격구에서 출발하여 시대에 따라 놀이방식, 전승집단, 놀이공간, 기능 등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규명한 글이다.
장치기는 지상에서 긴 나무막대를 이용해 나무 공을 쳐서 상대의 골문에 넣거나 결승선을 통과하는 편놀이로 현재의 필드하키와 유사하다. 이것은 마상격구가 지상화한 것으로 격구와 함께 오랜 역사를 지닌다.
조선 초기에 궁중에서 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타구(打毬)는 와아라는 구멍에 넣는 구멍투입형으로, 상층의 사교적 유흥문화의 성격을 지닌다. 한편 민간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목표물을 타격한 과녁타격형은 풍자적 놀이로 전승되었다. 한편 조선 후기 초동들의 장치기는 구문통과형, 선통과형이 중심을 이루는데, 고려시대부터 전승된 마상격구 방식이 구문통과형이나 선통과형이란 점에서 조선 초기에도 이미 위의 4가지 방식은 존재했으리라 본다.
장치기는 조선 중기 이후 총포의 발달로 인해 마상격구가 쇠퇴하면서 민간화한다. 구체적 기록이 나타나지 않지만 구전에 의하면 19c 후반에는 일반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20c 초반까지 초동들의 겨울철의 신체접촉이 이루어지는 편놀이로 대중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장치기는 상층의 자제들이나 서당의 학동에게는 상민의 놀이라 하여 억제되기도 했다. 그런데 1930년대 초, 경기도 수원에서 농촌계몽운동을 주도한 젊은 지식인들이 민족의식의 고취, 농촌계몽운동, 겨울철 체력단련의 수단으로 장치기가 적극 권장되어, 수원에서 대규모 ‘전국얼레공대회’가 신문사 후원으로 개최되었다. 그런데 이를 주도한 계층이 지주 출신 젊은 지식인 계층이며, 특히 일본에 유학한 사회주의 운동가 박승극이 이끄는 수원청년동맹이란 점이다. 다른 성격이지만 대구에서도 장치기협회가 결성되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보급되었다.
한편 민간 초동 중심의 장치기는 일제시대까지 성행하다가 20c 중반에 급격히 약화되어가다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일부 재현되거나 하키협회에서 권장되기도 했다.
결국 장치기는 초기에 지상격구 형태로 무인들의 개인적 무예연마나 상층 남성의 여홍적 놀이 기능에서 출발했다. 이후 기층집단의 아이들의 타격방식의 놀이, 또는 초동들의 격렬한 신체접촉에 의한 집단적 승부놀이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는 농촌계몽운동의 차원에서 민족의식을 함양하는 놀이로 권장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장치기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놀이방식과 기능을 지니며 전승되어 왔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장치기의 형성과 역사적 전승
Ⅲ. 장치기의 근대적 전승과 기능 변화
Ⅳ. 장치기의 시대적 의미와 기능의 변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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