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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희재 (광주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31집
발행연도
2009.11
수록면
329 - 351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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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은 출가위주의 불교를 벗어나 재가에서도 얼마든지 수행이 가능하며 출가와 재가가 대립된 세계일 수 없음을 말해준다.
원효의 회통사상은 재가불교의 위상을 결코 낮게 보지 않고 승속을 초월했다는 점에서 유마거사의 불이정신과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유마경의 주석서인 『유마경종요(維摩經宗要)』가 조선시대까지 존재하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원효의 생애에서 보여준 보살정신이란 유마거사의 보살행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것이다. 석굴암의 불상가운데서도 『유마경』의 문질품(問疾品)의 사실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이 병들어 웅크리고 있는 유마상이다. 신라에서 유마경이 불교의 주요사상으로 잘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그것이 석굴암의 조각에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원효의 화쟁사상을 높이 평가한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화상에게서 유마경을 배웠으며 보조국사 지눌도 유마경을 중요경전으로 인식했다. 조선의 17세기에 유마경이 출간되었는데 당시 발원문에서는 유마경을 사경한 공덕으로 위로는 나라의 임금과 육도중생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기원한 뜻이었음을 볼 때 단지 사상적으로만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유마경에 대한 영험을 알게 한다.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진 추사 김정희의 유마경에 대한 이해도 한국에서의 유마경의 지위를 알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의 그림 “불이선란(不二禪蘭)”은 바로 그의 유마경에 대한 선적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1874(同治 13)년에 한글 목판본의 『유마경』이 나온다. 이 경전은 선암사에도 있지만 최근(2008년) 서울의 은평구에서 금성당(무속인들의 공간)을 발굴조사하면서 역시 한글판 같은 『유마경』 2책이 나왔다. 무속에서 독송하는 것은 주술적인 영험이 있다는 것인데, 그 가운데 한글 『유마경』이 한 축을 끼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후기까지 유마경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며, 여기서는 민중들이 유마거사와 같은 재산과 장수 그리고 세속적 행복을 또한 염원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유마경의 위치는 원효에서 한용운까지 사회참여적 보살불교의 경전으로서 중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유마경의 세계
2. 시대별 유마경의 지위
3.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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