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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보한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45집
발행연도
2013.8
수록면
43 - 70 (28page)
DOI
10.18496/kjhr.2013.08.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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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환삼국해, 환남북국해, 환고려해, 환조선해에서의 외교와 교류에 대한 흐름을 시대별로 살펴보는 연구이다. 그리고 ‘환한국해’라는 통괄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한반도 중심의 해상 네트워크와 그 역사적 위상을 재정리하였다.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자국의 생존과 미래를 걸고 바닷길의 확보와 활용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신라인과 발해인은 탁월한 항해술와 교역 능력을 바탕으로 ‘환삼국해’와 ‘환남북국해’에서 교역권을 장악하였다.
해양국가인 고려는 송, 요, 여진, 일본 등과 자신감 넘치는 외교를 펼쳤다. 그리고 대몽항쟁과 몽골의 일본침입 때에서도 해양국가적 면모를 잘 보여줬다. 특히 고려 말 화포를 병선에 적용하여 왜구를 크게 물리친 것은 고려가 ‘환고려해’의 중심에서 동아시아 외교와 전투를 주도하였음을 의
미한다.
이러한 고려의 자신감은 조선으로 계승되었다. 조선 초 두 차례의 대마도 정벌이 그것이다. 대마도 정벌은 ‘환조선해’로 뻗어 나오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특히 임진왜란 시기에 이순신의 거북선 활용과 탁월한 전술로 획득한 해전의 승리는 ‘환조선해’에서 일본의 대륙 침략 야욕을 저지시켰다.
그런데 ‘환조선해’에서 조선의 해양 활동성은 점차 약화되었다. 이러한 조선의 해양성 약화는 명과의 교역로로 해로보다 더욱 안전한 육로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평화 시기가 길어지면서, 숙종 시기에는 수군무용론까지 대두되기에 이른다. 반면, 어업사의 측면에서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가 등장하는데, 그 내용을 통해서 어민의 활발한 어로 활동이 ‘환조선해’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근세 어업은 거리와 장비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반면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평화롭던 ‘환한국해’를 열강의 세력 각축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대 ‘環三國海’와 ‘環南北國海’에서 소통과 약탈의 제양상
Ⅲ. 중세 ‘환고려해’에서 해양국가 고려의 주체적 면모와 자신감
Ⅲ. 근세 ‘환조선해’ 권역에서 경계와 해양 활용의 변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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