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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교문화학회 도교문화연구 道敎文化硏究 第19輯
발행연도
2003.11
수록면
29 - 72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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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세의 道觀은 왕실의 ?齋醮設行이 주된 업무였으며, 독자적인 성립도교 활동의 근거가 되지는 못했다. 우리는 이를 官方道觀으로 부른다. 한국의 관방도관은 고려 중엽에 크게 흥기했으나 조선 초에 대부분 철폐되어, 소격서를 대표로 하는 극소수의 도관만이 임진왜란 전후까지 근근이 명맥을 유지했다.
고려의 군왕들은 도교의 초제를 통해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하늘과 독립적으로 교류할 것을 희구했고 天命의 接受를 과시하고자 했으며, 도관은 바로 그 祭場이 되었다. 한편 고려 왕실은 治國의 이법으로 儒ㆍ佛ㆍ道? 삼교를 고루 중시했고, 그 덕분에 중국식 도관은 큰 저항 없이 권부의 심장에 건조될 수 있었다. 이런 도관의 건립은 한국의 토착적 聖所의 쇠퇴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은 성리학을 국시로 하는 국가였으므로 왕실의 도교적 재초는 크게 위축되었고, 도관은 대부분 철폐되었다.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남은 소격서의 존폐를 둘러싼 임금과 儒臣들의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이어졌다. 그 갈등은 크게 예교논쟁과 이단논쟁의 문맥에서 펼쳐진다. 제후국인 조선이 하늘에 제사지낼 수 없다는 맥락에서 소격서의 초제를 문제 삼은 것이 예교논쟁의 핵심이며, 성리학 이외의 어떤 이념도 국가적으로 용인할 수 없다는 맥락에서 左道의 소굴인 소격서의 존치를 문제 삼은 것이 이념논쟁의 줄거리이다. 소격서는 미약한 국가기관에 불과했지만, 그 존폐는 곧 성리학적 질서가 지배한 조선의 자주성과 중국적 질서에의 예속성, 그리고 이념적 관용성과 교조성이 드러나는 척도였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Ⅰ. 佛寺 안의 仙敎적 성역과 의례
Ⅱ. 고려의 도관 : 권력과 성스러움의 중세적 일체화
Ⅲ. 조선 초기의 도관 철폐와 소격서의 설치
Ⅳ. 소격서 존폐 논쟁
Ⅴ. 맺는말 : 자주와 예속, 관용과 교조의 가름
【참고문헌】
【中文提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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