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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교문화학회 도교문화연구 道敎文化硏究 第18輯
발행연도
2003.4
수록면
9 - 4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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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와 道敎는 거의 같은 시기에 중국으로부터 고대 한국에 유입되었다. 그런데 당시 중국에는 佛寺와 더불어 道觀도 크게 번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대 한국인들이 佛寺만을 선별적으로 건조한 것은 특별한 사상?종교적 배경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도관은 대개 강력한 권력의 주도에 의해 건립되었다. 도관은 천상과 仙界로 대표되는 낙원,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권력자들의 욕구가 손쉽게 대리만족을 얻는 공간이었으며 하늘과 연결된 통로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도관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유교적 의례로 채워지지 않는 절대성과 초월성에 대한 향수를 만족시켰고, 군주가 하늘의 명령에 따라 지상을 통치한다는 天命論의 요청에도 부응했다.
그런데 고대 한국에는 중국에서 도관이 수행한 기능을 발휘하는 고유한 성소들이 독자적으로 건조되었고, 그 이념과 체계 역시 구비되어 있었다. 다양한 神廟는 자연신과 시조신이 일체화된 天神에 대한 신앙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적 의례의 祭場이었고, 하늘로부터 受命하고 천신과 교류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한편 祭天을 비롯한 고대 한국의 국가적 제의는 무교적 성격이 강했는데, 이는 곧 신선신앙과도 직결되었다. 고대 한국의 토착적 성소들은 중국식 도관의 기능을 이미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중국과 대등한 天下의식을 가지고 이를 고유한 祭儀로 풀어내던 고대 한국인들이 중국식 도관을 수입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문제제기 : 중국 도관의 유입과 관련된 의문
Ⅱ. 중국 도관의 기원과 기능
Ⅲ. 한민족에 고유한 성역의 이념적 구조
Ⅳ. 삼국의 神廟와 그 상징체계
Ⅴ. 한국 고대의 신묘와 중국의 도관
Ⅵ. 맺는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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