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상욱 (부산대학교) 김석준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33호
발행연도
2009.4
수록면
369 - 418 (5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농지개혁’은 우리의 핵심 과제로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1950년 경자유전의 원칙에 근거한 농지개혁이 시작되었고, 이는 전근대적 경제구조를 변화시킨 획기적 처방으로 다수의 소작농은 자작농으로 변화되었고, 종래의 지주층은 해체되어 그 중 일부가 산업자본가로 전환하여 자본주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농지개혁 직전에 대규모로 행해진 사전방매, 개혁 이후 계속된 농가경제의 영세성, 토지자본의 산업자본화의 실패 등 비판적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본 논문은 김해시 장유면 신문리 일대에서 진행된 농지개혁을 토지대장과 농지개혁 관련 문서들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지역 차원에서의 농지개혁의 실태를 실증적으로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1950년 장유면 신문리에서 농지개혁법으로 새롭게 농지를 소유한 순수 분배농은 82명, 이들이 소유한 면적은 1950년 신문리 전체 면적의 10%에 불과해서 농지개혁의 대상 폭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환완료 된 분배농지 231필지(소유자 146명) 가운데 66필지(소유자 51명)는 다시 다른 소유자에게 이전됨으로 소작농민의 자영농 체제로의 안정적 진입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였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하였다.
장유면에서의 최초 상환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1950년 여름에 이미 시작되었고, 1960년까지 총상환액은 전체의 95%선에 달했다. 신문리에서의 최초 등기이전은 1956년 6필지를 시작으로 1968년 모든 필지의 등기이전이 이뤄졌다. 필지별 평균 등기이전 기간은 12.1년이었고, 1963~1965년에 걸쳐 정부의 지속적인 독려와 지원 하에 가장 많은 필지의 등기가 완료되었다.
농지개혁을 통해 새로운 토지보유자가 늘어나고, 1인당 평균 소유면적의 하락이 해방 후 전 시대를 걸쳐 나타난 것은 농지개혁이 가지는 확실한 긍정적 효과였다. 마지막으로 장유면과 신문리의 농지위원회 구성과 그들의 경제적 상황을 관련 자료들을 통해 검토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신문리 토지대장 분석
3. 장유면 농지개혁의 실태
4. 맺으며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0-905-001618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