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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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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2집
발행연도
2009.10
수록면
107 - 13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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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宗(1874~1926)은 高宗과 明成王后 閔氏의 소생으로 1875년 세자로 책봉된 후 두 번의 혼인을 하였다. 본 연구는 왕세자 신분의 가례인 1882(임오)년 2월의 첫 번째 가례이다. 왕실 혼례인 왕과 왕세자가례는 『國朝五禮儀』 嘉禮에서 체계화 되어, 법도에 따라 六禮의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왕세자 가례에서 중심이 되는 의식은 친영이다. 그러므로 가례법복은 친영례를 행할 때 갖추는 衣?로 공복, 조복, 면복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1882(임오)가례 육례의식은 『國朝五禮儀』의 법례를 따르고 있으며, 고종 18년(1881) 11월부터 왕세자의 관례와 가례에 관한 논의가 있은 후 다음해(1882)에 관례는 정월 20일, 가례는 정월부터 이월까지 삼간택 후 六禮가 이루어졌다.
1882(임오)년 가례의 가례복은 의궤인 「왕세자가례도감의궤」와 「궁중?긔」에서 의대발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기록은 현재까지 발표된 자료 중에 의궤 기록과 발기 기록의 차이를 비교하여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일한 주인공의 혼인 기록인 의궤와 ?긔에서 국혼을 위해 준비된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의대기록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실제 복식을 제작한 궁녀들의 기록인 발기에는 현존하는 왕실 유품 등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복식명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각 의대의 소재 및 종류와 수량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어 『국혼정례』와 『상방정례』의 편찬 의지대로 기록된 의궤의 기록과는 달리 국혼의 규모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왕실 복식연구에 있어 지금까지 가장 중심이 되었던 의궤연구에서 더 발전하여 발기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궁중?긔」의 계속적인 연구를 기대하게 한다.

목차

국문요약
Ⅰ. 서론
Ⅱ. 왕세자 납빈의
Ⅲ. 1882(임오)년 가례관련 복식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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