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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수용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09 가을호 제32권 제3호 (통권 116호)
발행연도
2009.9
수록면
81 - 10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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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극락강변의 숲속 언덕에는 풍영정이 자리하고 있다. 칠계 김언거가 경영했던 이 정자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무등산 증암천 주변의 정자들과는 모습을 약간 달리한다. 우리는 풍영정의 겉모습에서 수기치인을 위한 장소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연회의 장소로 쓰이기에 적당했음을 알 수 있다.
풍영정은 김언거가 1543년경에 축조한 이래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으면서 광주권 문화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풍영정 제영에 차운시를 남긴 사람만 해도 200명이 넘는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하나의 시에 차운시를 남긴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누정원림들이 축조당시만 활동이 활발하다가 그 이후에는 적막해진 것에 비해, 이 정자는 광주의 대표 정자로써 줄곧 그 명성을 유지해왔다. 이는 광주나 인근지역에 부임해온 관직자들은 의례히 풍영정에 올라서 시 한 수 남기는 행사를 가져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풍영정이 광주지역의 대표적 문화공간으로써 그 명성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은 풍경이 수려한 곳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지만, 광주ㆍ나주ㆍ장성 등지를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관계로 많은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로운 지리적 이점도 크게 작용하였다고 본다. 이와 아울러 초축자의 역량이나 후손들의 수호노력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여 오랜 기간 문화의 중심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김언거와 풍영정
Ⅲ. 풍영정 제영을 남긴 인물의 특징
Ⅳ. 풍영정의 위상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English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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