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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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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17집
발행연도
2007.6
수록면
73 - 95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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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은 국초부터 왕실의 혈연관계를 밝히고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왕실족보를 다양하게 만들어왔다. 그 가운데 八高祖圖는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진 족보이다. 다른 족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적 흐름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작성되는데 반해 팔고조도는 나를 기점으로 출발하여 위로 나의 조상을 찾아 올라가 부모, 부모의 부모, 조부모의 부모, 증조부의 부모까지 內外 4代를 대상으로 트리형태로 작성한 족보이다. 팔고조도는 고려말, 조선초에 이미 그 원형이 나타나고 국왕뿐 아니라 왕비의 경우도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왕실 팔고조도는 왕의 계보를 간단하게 도표로 그려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가 컸다. 따라서 왕실 팔고조도는 처음에 왕실의 근원을 밝히는 단순한 族圖로부터 출발하였지만 왕실족보에 있어 중요성을 띠는 것은 조선후기 특히 숙종과 영조 때였다. 그 계기는 왕실의 방계자손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사례가 빈번하면서 팔고조도는 宗統을 설명하는 근거로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팔고조도는 조선조 멸망 후 이왕직 시기까지도 계속하여 작성되었다.
왕실 보첩 중에 八高祖圖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킨 국왕은 영조였다. 영조는 일생동안 수차례에 걸쳐 팔고조도 작성과 수정에 심혈을 기울여 팔고조도를 왕실의 족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영조가 팔고조도를 주목한 것은 후궁의 소생으로 한미한 외가를 가진 약점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까닭에 지속적으로 생모인 숙빈 최씨를 추숭하여 높이는 한편 외가의 선조들을 追贈하여 가문의 격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따라서 위 사항이 나타날 때마다 팔고조도를 수정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정조대에 이르러 국왕은 “圖ㆍ譜는 하나이고 둘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제시하며 八高祖圖를 선원계보기략의 世系篇과 子孫譜 사이에 넣어 선원계보기략의 한 항목으로 공식화하고 선원계보기략을 편찬할 때 첨부하여 일반이 열람 가능하도록 公刊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팔고조도가 고종대에 오면 크게 변한다. 그것은 숫적으로 팔고조도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영조대 작성된 『팔고조도』에서 2장짜리 팔고조도를 가진 임금이 선조, 경종, 영조이었던 것에 비하여 고종시기에 오면 2장의 팔고조도를 가진 국왕들이 숫자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순조대왕은 무려 4개의 팔고조도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조선말기로 가면 방계 혈족들이 왕위를 계승한 사례가 늘어난 결과인데, 종법질서가 문란해지고 崩潰되어 감을 팔고조도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왕실 팔고조도의 구성과 내용
3. 왕실 팔고조도의 성립 과정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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