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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사회과학연구 사회과학연구 2007년 제18권 여름호
발행연도
2007.7
수록면
117 - 137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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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두 초강대국(superpowers) 美-蘇가 전략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로 첨예하게 대결(confrontation)하였던 冷戰(Cold War)시대이다. 특히 베를린 사태 등 국제적 긴장 상태의 증가로 미국과 소련간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 급속도로 악화되던 1960년대 초 쿠바 미사일 위기는 전세계를 파국적 核戰爭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一大사건 이었다.
1962년 소련의 쿠바 미사일基地 설치 시도는 미국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였다. 케네디는 TV연설을 통해 쿠바에 배치되는 소련 미사일이 철수 되지 않으면 해상봉쇄(quarantine)를 취하겠다는 등 단호한 경고 메시지를 소련에 보냈다. 이에 소련은 날선 외교적 반격을 가했으나, 결국 미국의 군사적 우월성을 의식한 흐루시초프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쿠바 미사일基地 건설을 단념하기로 결정했다. 美-蘇간 核戰爭이라는 절망적 위기가 이로써 극적으로 해소되었던 것이다.
케네디의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에 흐루시초프가 계획을 바꾼 것은 미국의 소련에 대한 외교적 승리다. 소련이 쿠바에 배치하려던 미사일을 철수하게 된 것은 미국의 선제 행위에 소련이 적응한 결과였다. 그러나 소련 역시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에 미국에 완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쌍방간 일련의 행동과 반응에서 볼 때, 더 이상의 충돌은 어느 측에도 이롭지 않다고 판단한 美-蘇가 양보와 타협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즉 핵 대결의 상상할 수 없는 파국에 대한 공포가 상호간에 이성을 갖게 했다.
그 후,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해관계를 같이 한 美-蘇는 1963년 핵실험을 정지하는 ‘핵실험금지조약(NTBT)’ 을 체결했다. 두 초강대국이 이 조약에 서로 합의한 것은 사실 핵무기를 독점하고 군비 경쟁을 통제하려는 의도였다. 역설적이게도, 소련의 쿠바 미사일 철수는 冷戰의 긴장완화를 조성한 새로운 解氷의 분위기 즉 데탕트(detente)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는 核戰爭의 위협하에 두 초강대국들의 대결이 해결되기를 세계가 무력하게 기다리던 사건이다. 전세계를 핵 재앙 가까이 몰아넣은 이 미사일 위기에서 국제연합의 문제해결 기능은 한계를 극명히 드러냈고, 국제도덕이라는 합의된 규범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冷戰 종식 후 또 다른 양상의 국제적 분쟁과 갈등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심화시키는 오늘날, 국제도덕의 결여가 가져올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과거 쿠바 미사일 사태 때와 같은 신속한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 가 절실히 요구된다.

목차

1. The Clouds Gather
2. The Clouds on the Horizon
3. The Hurricane Warning
4. The Thunderbolt
5. The Dramatic Climbdown
6. A Lull in the Storm
7.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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