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사회과학연구 사회과학연구 2003년 제14권
발행연도
2003.12
수록면
127 - 145 (1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사회, 문화적 변동기에 수용된 조선천주교회의 정치사회적 성격과 역할을 규명하고자 한다. 특히 초기 신앙공동체의 사회적 구성은 어떠하였으며, 이들의 지도자들은 누구이었는가? 그리고 그들이 믿었던 천주교는 어떤 것이었던가 하는 문제를 우선적으로 규명하고 또한 자발적인 신앙공동체가 보편교회 인 바티칸교회에 흡수되면서 어떤 변화가 나타났으며 그 배경은 무엇인가하는 문제 역시 살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천주교회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나타났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를 추적할 것이다. 지식인계층의 이탈로 조선천주교회는 당시의 하층계급이 교회의 주축을 이루었으며 국가의 천주교에 대한 철저한 탄압으로 선교사의 입국이 차단되면서 민중종교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특히 신유교난 이후의 교회는 부녀자와 천민이 중심이 되어 명맥을 유지하였다. 결국 1831년의 공식적인 조선교구 설립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전주교인들은 개인적 행복을 위하여 신에게 기구하는 이기주의자들이 주종을 이루면서, 기존질서를 재생산하고 기존질서에 대한 전반적인 숙명주의를 조장하는 ”숙명론적 민중종교모델”이 구축되었다. 신유교난 이후 로마교회와 조선선교를 담당했던 파리외방전교회 등의 제도교회는 물론 조선전주교회까지도 조선왕국의 정치권력 대신 강력한 서구의 세속 권력의 협조를 통하여 교회를 유지ㆍ존속시키려는 전략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천주교회는 봉건질서의 해체기에 도입되어 평등의 이념을 기초로 하여 당시의 신분제적 질서에 저항하는 사회적 복음을 전파하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목차

Ⅰ. 서론
Ⅱ. 초기 신앙공동체와 가성직제
Ⅲ. 제도교회의 개념
Ⅳ. 국가의 개입
Ⅴ.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