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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사학회 경주사학 慶州史學 第23輯
발행연도
2004.12
수록면
109 - 155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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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와 朝鮮의 朝廷에서는 貢女와 함께 다수의 火者, 즉 고자를 元나라와 明나라에 보내어야 했다. 고려에서는 원나라에 100여 명의 화자를 바쳤고, 조선에서는 200여 명의 화자를 명나라에 보내었다.
中國으로 끌려간 화자들은 皇宮의 宦官이 되어 각종 잡일 등에 투입되었지만, 그 가운데는 중국 皇帝의 총애를 받고 고위 관직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린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중국의 使臣으로 뽑혀서 고국인 고려와 조선에 勅使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 초기에 입국한 명나라의 사신들은 거의 대부분 고려나 조선 출신의 화자들이었다. 조선 출신 명나라 사신들 가운데 尹鳳은 무려 12 차례나 사신으로 나왔고, 鄭昇, 白彦, 崔安, 鄭同 등도 여러 차례에 걸쳐 칙사로 선발되어 입국하였다.
조선 출신의 명나라 사신들은 조선에 들어와서 공녀와 화자를 뽑아서 데려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다. 그들은 그 외에도 貢物을 거두어가고 새 國王의 卽位를 승인하는 중국황제의 誥命을 전달하는 동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사명을 띠고 고국에 錦衣還鄕한 환관들은 그러나 황제의 威勢를 믿고 온갖 物品을 요구하거나 조정의 人事에 개입하는 등의 갖가지 弊害를 끼치기도 하였다.
조선조정에서는 이들의 無禮한 요구를 대부분 受容하는 자세를 취하였는데, 이는 國益을 고려한 불가피한 조처였다.

목차

논문 개요
Ⅰ. 머리말
Ⅱ. 朝鮮의 明에 대한 火者 進獻
Ⅲ. 火者 出身 明 使臣의 入國
Ⅳ. 尹鳳의 行跡
Ⅴ. 鄭 昇의 行跡
Ⅵ. 白彦의 行跡
Ⅶ. 崔安의 行跡
Ⅷ. 鄭同의 行跡
Ⅸ.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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