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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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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동양사상연구원 오늘의 동양사상 오늘의동양사상 제18호
발행연도
2008.4
수록면
117 - 13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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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시험을 통해서 관리, 나아가서는 지배층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이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배경, 특히 혈통을 보고 관리를 등용하는 음서蔭敍와는 구별된다. 스스로 원해서 시험을 치른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천거薦擧와도 다른 차원의 그것이라 하겠다. 과거가 처음 실시된 것은 중국 수나라 문제文帝 7년(587)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9년(958) 때 중국의 귀화인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과거제가 도입되었다. 그로부터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천여 년 동안 과거제는 한반도에서 대표적인 관리 선발 방식으로 기능했다고 하겠다.
고대 사회일수록 그 사람의 출신과 배경이 많이 작용하는 경향이 컸으며, 시대가 내려올수록 출신과 배경보다는 개인적인 능력이 중시되고, 또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측면에서 과거제가 갖는 일단의 진보성과 선진성을 살펴볼 수 있다. 동시에 과거제도에는 그 밝은 빛만큼이나 거기에 뒤따르는 어두운 그늘도 없지 않았다. 시험을 위한 공부, 학문의 경직성, 학문과 정치권력 사이의 가까움 등을 들 수 있겠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붕당 간의 대립과 갈등이 깊이 얽히면서 능력을 바탕으로 한 인재등용이라는 애초의 목표와 기능을 벗어나기도 했다. 말하자면 과거제는 결점이 있지만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개방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것은 곧 왕조의 안정에 기여한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제는 우리 사회에 문화적 유산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빛과 그늘이란 양면성을 느낄 때가 없지 않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과거제는 역사 속의 추억 정도로 기억될 것이며, 전통사회처럼 공부와 학문이 곧바로 정치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부와 학문의 중요성은 이어져 갈 것이다.

목차

1. 시험과 과거
2. 과거제, 그 성립과 전개
3. 조선시대의 과거제: 구성과 특질
4. 출세의 사다리와 시험지옥
ENGLISH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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