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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史學硏究 第88號
발행연도
2007.12
수록면
859 - 89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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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菱재벌의 岩崎久彌는 1907년 통감부의 권유로 한국에 5,000 여 町步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토지를 매입하여 ‘東山農場’을 창설하고 식민지 소작제 농업경영에 착수하였다. 三菱은 이후 기존 일본 국내의 농업 및 목축경영지와 한국의 동산농장을 합병하여 1919년 자본금 500만원(다음해 1,000만원으로 증자)의 東山農事株式會社를 설립하였다.
한국에서의 동산농장은 경기도 수원에 조선지점을 설치하여 전라북도 지부(전주, 군산, 김제, 익산), 전남지부(나주, 영산포, 함평, 광주, 영암), 경기지부(수원, 진위, 안산, 인천출장소)에 걸쳐 설립 이후 1945년까지 꾸준히 5,000정보대의 토지를 경영하였다. 또한 1940년 강원도 평강군에 약 2,000정보에 달하는 城山農業株式會社까지 설치하여 목축 및 임업 경영에도 착수하였다.
회사의 구조는 설립자 岩崎久彌의 개인 농장 성격이 강하였는데, 그는 총 자본금 1,000만원(주식 수 10만주)가운데 설립 초기 96%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후에도 여전히 50%대의 소유율을 유지하였다.
동산농장은 식민지 한국 내 다른 일본인 대농장과 마찬가지로 고율의 소작료 징수와 곡가폭등의 상황아래 고수익을 냈다. 또한 일본인의 구미에 맞는 쌀의 생산과 수출을 위하여 일본종자로의 개량을 강요하였고, 아울러 엄청난 양의 화학비료와 과다한 노동력의 투입을 강제하였다. 또한 회사 측에서 편성한 소작인 조합을 활용하여 소작인에 대한 치밀한 감시와 소작료의 효율적 징수를 기하여 60~80%에 육박하는 고율의 소작료 징수를 강제하였다.
동산농장은 다른 일본인 지주회사와 마찬가지로 경영기간 내내 일제 공권력의 지원 하에 꾸준히 식민지 초과이윤을 확보했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 한국인은 당연히 배제되었다. 그 경영의 성격은 개발이 아닌 수탈을 목적으로 한 개량이었고, 그 개량의 비용조차 식민지에서 고율의 소작료로 충당되었다. 따라서 동산농장의 경영 성격은 다른 일본인 회사지주와 마찬가지로 반봉건적 식민지 지주제의 전형으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三菱 재벌의 東山農事株式會社의 설립
Ⅱ. 회사 경영의 구조와 규모
Ⅲ. 동산농사주식회사의 농업경영 실태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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