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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정치사상학회 정치사상연구 정치사상연구 제4집
발행연도
2001.4
수록면
1 - 2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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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정조시대의 천주교 사건과 이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의 서학에 대한 인식과 종교적 갈등, 그리고 국왕 정조의 대응을 고찰한 것이다. 16세기 말 이래 서양의 과학기술과 함께 우리나라에 알려진 천주교는 정조 연간에 들어서 南人 인사들을 중심으로 신앙의 실천 차원에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정조가 당파를 초월하여 유능한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이른바 탕평기이기도 했다. 정조는 등극 직후부터 노론의 일당지배체제를 견제하기 위해 노론과 소론은 물론, 남인의 인재를 조제보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그는 또한 붕당 및 신하들 상호간의 비판과 견제를 통해서 왕권을 강화하려 하였다. 이에 대 해 당시 노론의 신하들은 채제공 등 남인의 인사들의 중용을 극력 저지하기 위해 남인의 약점인 천주교 문제[西學]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노론의 신하들이 이처럼 천주교 문제를 거론하는 이면에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는 것으로 파악한 정조는 천주교 문제에 대해 온건하게 대응하는 한편, 노론의 약점인 패관문체[邪學]를 들어 ‘문체반정’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조의 이같은 정치운영방식(以熱治熱)은 노론과 남인 사이에, 그리고 시파와 벽파 사이에 극도의 불신풍조를 형성하였다. 남인의 채제공과는 “한 하늘 밑에 같이 있을 수 없다”[不俱載天]는 노론 김종수의 말이 그 예이다. 이같은 불신관계는 정조 사후, ‘신유사옥’과 같은 노론의 남인에 대한 대규모 정치적 탄압으로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서학의 종교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과학기술적인 면까지 전면 금압ㆍ봉쇄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목차

논문요약
Ⅰ. 머리말
2. 정조 중반기의 政局과 천주교 논쟁
3. 천주교사건과 ‘정치가‘ 정조의 대응
4. 맺는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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