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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경섭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7호
발행연도
2025.3
수록면
241 - 276 (36page)
DOI
10.37331/JKAH.2025.03.117.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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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중성리 신라비」(441)는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신라 석비이며, 신라 지배층 사이에서 일어난 지방 4개 촌락의 作民(노동 인민) 지배권을 둘러싼 분쟁의 결정[敎]과 그 처리 과정을 기록하였다. 이 논문은 비문의 문장 구조를 분석하여 내용을 분명히 밝히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으며, 나아가 당시 신라사회에서 文字와 石碑가 어떠한 기능을 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비문은 신라가 漢字라는 중국의 문자를 수용하고, 국가적 書記제도를 갖추기 시작한 후 비교적 이른 시기의 문장으로 작성되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구술성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입말의 언어가 한자라는 문자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문장은 ‘말하다’의 의미를 지닌 動詞들을 중심으로 작성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순서에 따른 發話의 장면들을 나열적으로 기록한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당시 신라는 漢字를 수용하여 문자를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문자문화는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특히 지방의 촌락 사회는 구술성이 지배적인 사회였으며, 거의 모든 인민들은 문자의 리터러시 능력이 부재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분쟁의 결정으로 내려진 ‘敎’는 인간의 말로 발화되어 문자를 매개로 전달되었고, 다시 인간의 말을 재매개로 公布되었다.
이후 분쟁이 일어난 지역에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세워졌다. 문자와 석비라는 미디어는 발화되어 사라진 구술의 순간을 보완할 수 있었다. 나아가 문자와 석비는 신라 지배자공동체인 喙評 집단과 인민들을 상대화하여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현상하고 상징하는 미디어로서 작용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판독과 비문 구조
Ⅲ.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분쟁 내용과 처결
Ⅳ. 「포항 중성리 신라비」에 문자화된 구술성
Ⅴ. 맺음말 : 신라사회에서 초기의 文字와 石碑문화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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