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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형수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113輯
발행연도
2025.1
수록면
5 - 3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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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1351년 동안 고려 국왕은 모두 7명의 원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당시 공주를 배종하여 고려에 왔던 수행 인원 가운데 怯怜口[이하 겁령구]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高麗史󰡕의 설명에 의하면 私屬人, 즉 공주가 사적 소유한 종복이었다고 풀이된다. 대표적 사례로 忠烈王妃 齊國大長公主를 따라온 印侯와 張舜龍 등 겁령구 5인이 있다. 이들은 고려에서 관직과 성명을 하사받아 정착하였고 공주의 위세에 의지하여 권력을 누렸으며, 몽골인과 색목인 출신이 많아 문관의 소양인 유학이나 문필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으나 무엇보다 對元使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일부는 후대에 이르러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던 자손들에 의해 姓貫의 시조가 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문헌 자료에는 제국대장공주를 제외한 나머지 공주의 겁령구가 찾아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선시대로 시야를 확대하여 관찬 사서와 지리지, 각종 문집과 족보 등을 살펴보면 비록 겁령구라고 명기되어 있지 않지만, 귀화성씨 시조가 원 공주를 배종한 기록이 다수 발견된다. 전체 22인 사례 중에 恭愍王妃 魯國大長公主를 배종한 인물이 13인에 달한다는 점이 특징인데 그들 대부분은 中華人(中原人), 즉 漢族 출신이며 혹은 원의 과거에 급제하는 등 기존의 겁령구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서 비교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몇 명을 선별 검토한 결과, 문헌 간에 사실 관계가 서로 맞지 않거나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있으므로 조선시대 문헌 자료에서 노국대장공주를 배종한 인물의 기록은 그대로 믿기에 어려움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충렬왕대 怯怜口의 양상과 특징
Ⅲ. 조선시대 문헌의 공주 배종 사례
Ⅳ. 공주 배종 기록에 대한 비교 검토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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