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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고고자료를 통한 지방도시 죽산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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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istics of Juksan in the Local City through Archaeological Materials in the Middle Ages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한철 ((재)국원문화유산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75호 KCI등재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161 - 192 (32page)

이용수

표지
중세 고고자료를 통한 지방도시 죽산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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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지역은 삼국 이래 조선말기까지 지리적으로 중국으로 가기 위한 통로, 영남과 호남을 잇는 교통의 중심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죽산지역은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후삼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호족간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였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후백제 및 궁예를 후원했던 청주세력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앙세력에 의한 경영이 촉진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개경을 중심으로 하는 교통이 강조된 내륙행정도시로 변화함과 동시에 거란의 1차 침입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도 중요시 된 것으로 보인다.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설치하여 지방관이 파견됨으로써 군사적인 성격에서 농업과 상업의 교류를 위한 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역으로 성격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죽산지역 내에서 확인되는 출토유물 시기를 분석해 보아도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전반에 걸쳐 죽산지역은 지방도시로써 꾸준한 발전을 이룩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죽산면 일대에서 고려시대 유적의 성격을 바탕으로 공간적 특징은 죽주산성과 망이산성을 중심으로 하여 그 남쪽(진천-청주)에서 올라오는 고대 교통로를 통제할 수 있는 곳에 배치되고 있다. 불교유적과 생산 및 생활유적은 죽산천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구분되어 확인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분묘유적은 비봉산과 남산 일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특히 북쪽에 위치한 비봉산의 분묘 분포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인구의 증가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인구의 밀집도를 알 수 있는 비봉산에 분포한 매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농업 및 상업경제를 기반으로 발전한 왕실사찰인 봉업사지가 위치함에 따라 죽산천 북쪽구역을 지방도시의 중심권역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렇듯 죽산지역은 지방도시로서 체계적인 발전양상을 보였으며, 당시의 정치 이념을 반영한 도시설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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